데카르트 사상의 혁신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 ‘자유로운 나라’였던 네덜란드도 캘빈파 신학자들의 박해로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그 무렵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1649년 가을 스톡홀름으로 가서 지내던 중 폐렴에 걸려 생애를 마쳤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철학에서 에로스는 가장 높은 이상인 이데아(idea)를 그리워하는 정신적 사랑이었고, 지성적 탐구욕이었다. 불완전한 자기(현실)로부터 완전한 자기(이상)를 실현하려는 끊임없는 상승의지가 바로 에로스요, 철학적인 「애지」인 것이다.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인간은 신과 동물과의 중간자
철학자로서 심리관찰에 통달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 예로서 합리주의적 형이상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데카르트가 《정념론(情念論)》을 썼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비합리적 현실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안목의 소유자였다. 말브랑슈의 철학에서도 형이
철학을 통해 경험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신학적 교리를 공고히 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과거 엘리트주의적 신분제를 옹호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기존의 사회체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되기에도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통해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이뤄
1. 불의 이용
초기 인류가 이룩한 가장 큰 기술적 변혁으로는 불의 발견과 그것의 광범위한 사용을 들 수 있다. 인류가 초기에 달성한 기술적 성과 중에 직조와 재봉 등은 이미 몇몇 동물들에 의해 선행되고 있었지만 불은 어떠한 동물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또한,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마찰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