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탐험가 Livingston과 미국의 Stanley 등에 의해 내륙지방의 사정이 알려지게 되자 제국주의로 접어든 유럽열강은 앞은 다투어 아프리카로 진출하였다. 1875년까지 아프리카에 비교적 확고하게 건설된 식민지는 영국의 케이프 식민지(Cape Colony), 프랑스의 Algeria, 그리고 네덜란드인의 후손인 Boer인이 건
프랑스의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을 계기로 붕괴하여 자유주의 이념이 달성되었다. 그 이후로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민족의 자유를 추구하는데 더 중점을 두었고, 1850-1870년대에 국민주의 운동은 크게 성취되었다. 즉, 이탈리아와 독일의 국가적 통일, 미국남북전쟁 후의 국민적 통일, 일본명치
아프리카 지역의 분쟁은 기본적으로 식민지 유산과 냉전 유산에서 발생되었다. 이들 국가들은 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50년대와 60년대 차례로 독립했지만 식민지 유산은 쉽게 청산하지 못했다. 식민지배 당시의 지배층-피지배층간 반목, 이에 따른 종족간의 갈등이 그대로 남았다. 이 갈등의 씨앗은 냉전
대한 가부도 알리지 않은 채 결국은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전면전쟁에 말려든 미국에 대해 수일 후 독일과 이탈리아가 선전포고하였다. 그리고 영국 및 그 연방국가들과 중남아메리카제국이 미국과 함께 일본에 항전하였다. 26개국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대항하는 연합전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 1892-1982)는 역사는 매 시기마다 역사가에 의해 항상 다시 쓰여 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연속 강연에서 발표된 것으로서 “역사란 결국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 했다. 역사가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