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에서는 <존재>의 의미도 <그 자리에 있음 현전>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자신의 눈앞에 세울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유할 수도, 경험할 수도, 그것에 대해 말할 수도 없다. 철학/학문/과학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만 다룰 뿐, 존재하지 않는 것, 즉 무에는 관
)라는 니체의 말을 자주 인용하였다. 프랭클의 이 말은 모든 치료의 좌우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니체의 또 다른 명언인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Frankl, 1963, p. 130 재인용)라는 말은 프랭클의 경험이나 저서의 핵심이다.
프랭클은 의미치료를 발전시켰는데 이는 ‘
삶을 바꾸기도 한다. 이것이 현존재의 사실성이다. 사실성은 학문 이전의 본성 상태로서 기분이다. 이것은 자명한 판단이다. 우리는 그 기분을 다른 사람과 상호 관계를 맺으면서 내포하고 있다. 어떠한 기분 상태에 내던져진 존재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현존재는 이미 세계에 있음이다. 우주와 타인
철학 영역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1. 실존하는 다자인
하이데거는 인간이 하나의 개체이면서 동시에 세계 속에 속해 있는 존재라고 보고 인간을 세계 속에 이미 있는 존재, 즉 세계-내-존재라고 하였다.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를 가리켜 다자인(Dasein)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현존재(現存在)
철학은 독백에서 대화로, 객관성에서 연대성으로, 진리에서 실천으로 변해 갈 것이라고 로티는 주장한다. 이러한 로티의 주장이 과연 타당성을 지니는지를 살피려면 해석학 일반에 대한 세밀한 논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을 살피는 것이 존재해석의 단서를 제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