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었고 만대의 정신적 사표가 되셨다. 선생은 명종 16년(1561) 에 도산서당을 세웠고 사후 4년만인 선조 7년(1574)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을 사액하셨다. 1970년 정부에서는 서원을 보수 정화하여 성역화 하였다. 주요 저서로 계몽전
선생의 학문적 특징을 지적하여 "공경과 의리를 함께 지키고, 지식과 행위를 함께 나아가게 하며, 겉과 속이 한결같고, 뿌리와 가지를 함께 들어올리며, 큰 근원을 꿰뚫어 보고, 큰 근본을 일으켜 세운다." 라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지적은 퇴계의 학문이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라는 도학의 두 축을 상
1. 근현대 민족ㆍ민주운동과 호남의 위상
1-1. 일제 강점기 호남에서의 민중운동
정순제,「호남종횡관(湖南縱橫觀)」: “전남은 과거 갑오운동과 현금의 농민운동의 진원지로서 무산의 소작인들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부터 약자의 무기는 오직 단결뿐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면 단위로 노동단체를
◆ 수양론과 궁리론
퇴계 학문의 기본적 성격은 주자를 표준으로 하여 도학의 철학적 근거를 밝히고 인격적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의 사상에는 성리설의 개념적 분석체계와 더불어 수양론의 실천방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학의 학문적 기본방법을 거경(경의 생활화)과 궁리(진리탐구)라
사상의 큰 산인 원효와 퇴계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퇴계와 나의 전공인 윤리문화학을 더불어 생각해보니, 내게는 무엇보다 퇴계의 삶과 사상들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과제의 주제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퇴계의 삶과 사상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현 시대에서 필요한 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