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이황의철학사상퇴계는 심의 지각 판단인 인심과 도심을 어떤 기준을 가지느냐에 따른 작용 자체로 구분하고 있다. 즉 판단의 기준에 따라 인심과 도심으로 나눈 것이다. 그럼 인심과 도심3이란 무엇일까? 인심은 주관적인 판단으로 신체의 기운과 욕구의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
인물로 부상하였다.
그동안 《동호문답(東湖問答)》, 《만언봉사(萬言封事)》, 《성학집요(聖學輯要)》 등을 지어 국정 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왕에게 제시하였고, 성혼과 '이기사단칠정인심도심설(理氣四端七情人心道心說)'에 대해 논쟁하기도 하였다. 1576년(선조9년) 무렵 동인과 서인의 대립
칠정)을 부려 자연에게서 입은 공덕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Ⅱ. 퇴계이황의 주리적 특징
퇴계가 뛰어나 성리학자 중의 하나이므로, 그의 근본철학이 이기설로 이루어짐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긍의 이기설이 대체로 기보다 이에 치중하는 이른바 주리의 특징을 가진다는 것도 학계에 이미
엄밀성만이 추구되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주자학이 한국의 성리학으로 토착화되는 기반이 구축되었으며, 유학사상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7. 이황과 이이의 비교 분석
1) 이황 李滉 [1501-1570]
조선시대의 학자·문신.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 시호는 문순(文
철학(新儒家哲學).
중국 송나라 때 주자(朱子)에 의해 확립된 성리학(性理學)의 사상에 반대하여 명나라 때 왕양명(王陽明)이 주창한 학문이다. 성리학과는 대립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육상산(陸象山)의 철학과 함께 심학(心學)으로도 불린다. 왕양명은 초기에 성리학(性理學)을 공부하다가 주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