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그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본인은 “한국 기독교회사 1.2권. 바로 이것이다!” 라며 감히 본 저서들을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라한 무덤들의 보수와 치장도 중요한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들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뿌리고 간 복음의 역사와 정신을 후대에게
한국기독교의 역사서술은 사관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발전 과정은 백 낙준 박사의 선교사관에서 시작하여 민경배교수의 민족교회사관을 거쳐서 주 재용교수의 민중교회사관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모든 사관은 보수 진보 양측으로부터 가혹한 비판을 받고 있다. 선교사관은 진보 진영으로
교회의 역사
* 한국교회사
1 ) 한국 기독교 교회의 시작
한국 백성이 기독교와 접한 것은 신라시대부터라고 추측기독교 한 분파인 '광명의 종교'
라는 뜻의 경고가 있었고,중국 서안부 근처에 세워둔 대진경교 유행 중국비를 세움.
->그러나 이 비석과 꼭 같은 모조품이 1917년 한국 금강산에 있
용재 백낙준은 한국 최초의 교회사가이고, 근대적 역사방법론과 학습훈련을 거친 학자로서 한국교회사 연구의 시초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업적이 선교사나 외국의 연구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를 수용한 한국인 기독교 역사가에 의한 업적이라고 할 때 그의 한국교회사 연구가
한국교회사, 한들, 서울, 1995, p. 247
1. 네비우스 선교정책-삼자선교정책
(1)자급: 한국교회 성전건축은 한국교회의 힘으로 건축되었다.
①자급의 원리: 교회 설립, 학교 설립, 성경의 배포, 병원사업도 적용
②자급의 범위: 재정적인 문제, 신앙의 힘으로 복음 전도, 교회 설립까지 확장
*18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