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네비우스선교정책에서 곽안련 선교사는 네비우스선교정책의 핵심이 성경공부에 있었고 이것이 자립, 자치, 자전의 실현을 가져다주었다고 지적했다. 성경공부의 구체적인 연구와 삶 속에서의 실천이 결국 자립, 자치, 자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하였다.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1,
네비우스선교사를 통해 한국선교의 정책을 자문 받아 이를 시행한 결과 한국교회는 자립, 자치의 원칙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러한 원칙에서 자라나는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독립적 신앙인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이 같은 독립적 신앙인격은 기독교선교를 위한 열정으로 연결되기도
한국교회와 선교(169)
- 한국선교는 커다란 핍박과 함께 시작되지만 근대화의 기초를 이루는 것과 국가적 발전을 이루어 가는데 기독교(개신교)는 큰 역사적 공헌을 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기독교선교 역사는 특이한 특징을 가지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외래의 선교사들에 의
정책이. 더불어 이와 함께 구미의 교회와 선교단체의 선교열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19세기 중엽에 미국에서 3차 복음 각성운동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다. 선교를 위해 복음주의적 선교 단체들이 조직되었고, 선교사들이 다수 배출된다. 일부는 기독교의 선교를 미국의 팽창 정책
2차 중국선교사 대회에서 선교전책에 관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890년에 언더우드의 요청으로 일본여행을 한 후 한국으로 와서 한국에서 젊은 나이로 선교하고 있는 장로교 선교사들에게 그의 정책을 한 주간 강의하기도 하였다. 1893년 가을에 니비우스는 심장마비로 64세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