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 백낙준은 한국 최초의 교회사가이고, 근대적 역사방법론과 학습훈련을 거친 학자로서 한국교회사 연구의 시초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업적이 선교사나 외국의 연구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를 수용한 한국인 기독교 역사가에 의한 업적이라고 할 때 그의 한국교회사 연구가
기독교와 휴머니즘
1.칼 바르트의 '새로운 휴머니즘'
1950년 2월 2일 취리히에서는 유럽 각국에서 모여든 철학가, 역사학자, 신학자, 맑스주의자와 과학자 등 각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하여>라는 부제아래 '휴머니즘의 정의와 해석'에 대해 논의했다. 휴머니즘에 대한 여러 가지
한국기독교사 탐구』 (대한기독교서회, 2011), pp.201-202 참조
, 이 가운데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 또한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발제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신중히 고려하여 되도록 객관적인 입장에서 1980년대 한국교회 통일운동사를 개관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Ⅰ. 그리스도교(기독교)의 기원
만주(만주)는 한국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오는 경로가 되었고 역사의 한 장이 되었다. 한국 개신교사에 첫 순교자{{제네럴 셔어먼(General Sherman)호는 미국 프레스톤(preston) 소유의 중무장상선으로 1866년 9월 2일 양각도(양각도)에서 불타고 이 배에 탔던 사람들은 평양군
한국기독교는 그 양적인 성장의 면에서 괄목할 만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웃의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같은 아시아 국가 중의 하나인 인도의 경우가 한국보다 훨씬 앞서 그리고 더욱 많은 서구 선교사들이 파송되었던 점을 비교해 보면 한국의 기독교의 번영은 더욱 이채롭다. 그러한 성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