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과 사부학당, 지방의 향교 설립
③ 과거제도의 정비
- 국가의 통치와 국가기구의 운영에 참여하게 될 관리를 선발하는 시험
- 조선이 지향하는 국가질서를 유지하도록 하는 사회제도의 근간으로 자리 잡게 됨
④ 국가교화와 유교적 예속
- 국가의 지배이념을 일반백성에게 내면화 시키
정부에 의해 설립된 관공립 학교에서는 내무대신 박영효가 국사와 국문 교육을 강력히 추진했기 때문에 역사교육이 근대학교의 새로운 교육을 대표하는 위치에서 진행되었다. 근대학교의 역사교육이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인 자료가 남아있는 것은 없지만, 세계사와 한국사 교
, 신백우와 함께 삼재(三才)로 불렸다. 이후 선생들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입사하여 김연성, 류인식, 변영만, 조소앙 등 사회 변화와 시대 의식에 관심 높았던 동창생들과 새로운 사조와 신학문에 대해 토론하면서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사조에 대해 폭넓게 학습하며 현실을 생각하고 보는 눈을 키웠다.
한국사관’을 흔히 ‘식민사관’이라고들 부른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용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식민사관’이라 하면 우선 식민을 하는 쪽이 주체인지, 식민을 당하는 쪽이 주체인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관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범세계적으로 일어났던 하나의 역사적 현상인 식민
조선조 유교정치 문화』,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2008, 37면.
민본주의 사상에서는 일반 백성들과 지배자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하며, 지배자들이 백성들의 안정된 생활 영위를 보장하기 위해서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특히 조선의 신흥 사대부들은 유교의 생생지덕(生生之德) 이념을 구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