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베버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중국의 유교적 가치관이 프로테스탄트 윤리, 즉 청교도들의 믿음인 “예정설”과 “소명의식”과 같이 자본주의 정신의 발전을 촉진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자본주의 정신의 발달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그
심학자다운 심학자로서는 겨우 18세기 초에 鄭齊斗 하나를 배출했을 뿐이다. 19세기 말엽에 와서야 朴殷植 등에 의하여 심학에 대한 관심이 새로워지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거의 [程朱學 절대 우위의 성리학]의 전개를 본 이것이 한국성리학의 첫 번째 특징이다.
2. 主知主義 특
이기심성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한창이던 16세기 말엽부터 예학(禮學) 역시 매우 고조되었다. 유학에서 분류하는 예의 종류는 300~3000종이 있다고 할 만큼 잘 세분화되어 있다. 성리학자들은 예학을 연구하여 각각의 상황에 합당한 인간의 행위 규범을 제정, 준수하고자 하였다.
예의 준수는 성리학의
다산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도 중세사회의 모순이 터져 나오던 시기였으면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였다. 재편되는 사회질서 속에서, 성리학에 대한 자생적 비판과 외국 문물의 전래를 통해 지식 영역이 한껏 확대되고 과학적, 합리적 사고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넓은 세계관이 형
발전시킨 인문학으로는 통일신라와 고려의 불교학, 조선의 성리학, 조선후기의 실학 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21세기라는 현대 사회에 가장 관련이 깊고 실제로 많은 시사를 줄 수 있는 것은 조선후기 실학이다. 이런 점을 염두 하여 조선후기 실학의 발생배경 및 사상적 특징, 그 한계점 및 국문학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