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의 비판에 따르면 망기당은 불교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회재의 비판은 망기당 개인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방법, 수양 방법을 전면적으로 비판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망기당과의 무극대극 논변이 조선유학사상 제일 먼저 있었던 주요한
구인록 求仁錄》(1550)
《대학장구보유 大學章句補遺》(1549)
《중용구경연의 中庸九經衍義》(1553)
《봉선잡의 奉先雜儀》(1550)
“세상의 근본은 임금에게 있고, 임금의 도는 마음에 있으며, 마음의 방법은 인의에 있다. 그 길은 지극히 가까워서 멀지 않으며, 그 방법은 지극히 간단해서 복잡하
사상의 변화 등의 정치·경제·사회·사상·문화 등의 여러 분야에서의 엄청난 변혁과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문벌 귀족 중심의 사회이자 중세사회였던 고려사회에서 사대부 중심의 사회이자 근세사회였던 조선사회로 발전한 것이다. 여말선초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먼저
1. 생애 및 저서
이언적(1491-1553)은 조선시대 전기의 철학자로 본관은 여주이고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이며 자는 복고(復古)이고 이름 적이다. 시호는 문원(文元)이고, 원래 이름은 적(迪)이었으나 중종의 명령으로 언적(彦迪)으로 고쳤다.그는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2세 때부터는 외숙인 손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우리는 한국의 전통에서 그 해결점을 모색 할 수 있다. 전통이란 단순히 과거에서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통이 현재의 문화, 사회를 문제점을 발견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이미 알고 있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꼭 집고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