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에는 벽돌의 사용, 거중기의 이용 등 실학자들의 주장이 많이 채택되었다. 정조는 수원성곽의 공사가 끝난 후 공사 과정의과 비용, 들어간 물자들을 낱낱이 적은 일종의 공사 결과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정리자(整理字)의 활자로 인쇄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 결과 1970년대
화성을 한국사상과 조경적 측면에서 분석해 봄으로써 수원화성에 담겨진 역사적 의의와 조상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고자한다.
보고서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화성이라는 유적지는 크기나 규모가 방대하므로 한국의 전통조경의 특성과 깃든 사상을 개괄적으로 알아본 후,
나라의 정원들을 살펴보는 작업을 이루어나갈 것이다. 우선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정원을 살펴봄으로서, 동아시아의 정원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들과 정원의 구성들을 고찰한 뒤, 각각의 사례를 사진과 함께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후에, 유럽의 정원으로서 프랑스의 것을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5) 병자호란 당시의 남한산성의 의미 : 남한산성의 돌맹이, 기왓장 하나까지도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 이었다. 남한산성은 우리역사 속에서 우리민족이 당한 침략에 대항한 항전 정신과 독립정신이 깃들어진 장소이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도성과 한강유역을 방어하는 군사적 최적의 요충지로서 비록 항
조경을 즐기면서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공간은 몰의 주요동선으로부터 후퇴시키고 보행자들이 그늘지역에 앉아 있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햇빛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휴식을 위한 가로 시설물에는 벤치, 셀터, 파골라등이 있다. 벤치는 보행공간에서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