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9. 18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68:10). 또 18일에는 미군의 각 국장임명이 발표되는 등 109명의 장교가 군정시행과 동시에 각기 직무에 임명되었다. 다만 이들 미군정장교단원들은 전선에서 차출되어 한국의 실정이나 각자의 행정 직무에 관하여 사전의 지식이나 준비도 갖추지 않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45년 해방을 현대의 시작이라 보는 두 가지 설(說)이 공존하다가 잠정적으로 1945년 설에 합의하였으나 1980년 전후 1926년의 ‘타도 제국주의 동맹’을 그 시작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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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한국근대사(근현대사)의 역사
오랫동안 권위주의 체제에 익숙해 있던 일반 대
전쟁은 일어난 지 3년 만인 1953년에 휴전선이 성립됨으로 끝났다. 6.25동란은 남북한 모두 엄청난 임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발생하였을 뿐 아니라, 민족내부의 갈등이 심화되어 남북한의 분열이 고정되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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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한국근대사(근현대사)의 성격
4세기 말의 소수림왕과 침류왕 때, 신라는 5세기 초의 법흥왕 때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고대국가로서의 이념을 정립하고 발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은 또한 3국에 유학을 가르치는 太學들이 설립되고 각종 법령이 정비된 때이기도 하다. 당시 불교는 동아시아 전체를 풍미하던 심오한 종교 사상
항쟁론이 아닌 억압과 단선․단정에 반대한 자발적인 민중항쟁론이다.
“탄압이면 항쟁이다”는 억압에 대해 도민들이 자발적으로 저항했음을 보여주는 구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1947년으로 넘어가면서 미군정의 실정과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군정경찰의 부정부패 행위는 도민들의 민심을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