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10). 또 18일에는 미군의 각 국장임명이 발표되는 등 109명의 장교가 군정시행과 동시에 각기 직무에 임명되었다. 다만 이들 미군정장교단원들은 전선에서 차출되어 한국의 실정이나 각자의 행정 직무에 관하여 사전의 지식이나 준비도 갖추지 않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총독부 통치의 기본 기구는 당
. 한국민족주의와 남북관계, 도진순, 64쪽
그러나 이승만과 미군정의 계략에 의해
비상국민회의 정무위원 28인 모두가 민주의원이 되면서 비상국민회의는 미군정의 자문위원단의 성격으로 바뀌게 된다.
제 1차 미소공위가 실패로 끝나자 미국무부에서는 민주의원의 용도폐기 논란이 일어났고
전쟁은 일어난 지 3년 만인 1953년에 휴전선이 성립됨으로 끝났다. 6.25동란은 남북한 모두 엄청난 임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발생하였을 뿐 아니라, 민족내부의 갈등이 심화되어 남북한의 분열이 고정되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됐다.
≪ … 중 략 … ≫
Ⅱ. 한국근대사(근현대사)의 성격
한국 근·현대사』, 기파랑, 2008, pp.165~167.
반면, 금성교과서는 원조경제 자체를 부정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원조경제로 인해 한국의 경제가 미국의 영향 아래 놓였다는 점을 들고 있으며, 미국의 원조는 한국을 공산주의 방어기지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데 그 목적이
보고 있다.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국사교과서에서도 ‘약탈’, ‘경제적 침탈’과 같은 용어를 쓰고 있는데, 사실 일본의 수탈과 약탈이라는 부분은 그들에 있어서는 쌀, 콩의 수입에 불과할 따름이지 ‘수탈이나 약탈’로 보는 것은 사태의 오도라고 교과서 포럼측은 주장한다. 같은 책, p11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