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중국의 서적을 참조하여 고구마 재배법을 소개하였다. 19세기 초에 이르면 고구마는 남해안 지역의 특산물이 되어 특히 제주도와 강진의 고구마가 유명하였다. 19세기의 학자 이규경은 백과사전적인 저술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고구마가 전파된 지 80여년이 지났지만, 기
제 2차 세계대전 시, 군인의 전투 식량으로.
당시 일제 점령기이던 한반도에도 이와 같은 형태의 김밥이 들어오게 됨
우리의 추론 :
1. 조선에 정착된 초기 김밥의 형태(밥을 김에 싸먹는) 가 일본에 전해지고
2. 일본에서 변형된 김밥의 형태(노리마끼, 스시마끼 등)가 다시 한반도로 전해진다.
조선통신사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논란은 과연 통신사는 朝貢使인가 하는 점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사학계에서는 침략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조선통신사를 조공사로 여기는 관점을 통설화 시켰다. 현대에 와서는 이런 관점은 많이 순화되어 한국 사학계와의 연계연구까지 이루어질 정도로
Ⅰ. 삼국시대 한∙일 음식문화교류
<술과 누룩>
[고사기]
"술의 양조에 관해서는 오진 천황 시대, 백제에서 니호, 다른 이름으로 스스코리(須須許理)라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와서 좋은 술을 제조해서 헌상했다. 천황은 이 술에 취해 기분이 매우 좋아서, '스스코리가 빚은 향기로운 술에 이 몸이
본 NHK에 방영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여러 드라마와 음악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부터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고 한국 문화는 단순히 드라마나 음악을 넘어서 온라인 게임, 음식 분야 등으로 일본에 진출한다. 그러나 한일(韓日) 양국 관계가 독도 영유권 분쟁, 일본의 교과서 왜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