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반공체제에 의해 철저히 역사의 뒤편에 감춰져야했던 사회주의 운동가들도 당당한 우리의 민족투사였다는 것을 다시 각성하면서 오늘은 많은 사회주의자들 중에 ‘이재유’와 ‘이재유 그룹’의 활동, 그리고 그 이후의 다시 결성되는 ‘경성콩그룹’과 ‘박헌영’까지 얘기하고자 한다.
경성 콤그룹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2. 당 재건운동의 배경
(1) 1920년대 말 조선공산주의운동의 위기
1920년대 말 조선공산주의운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 위기는 1920년대 조선공산주의운동이 안고 있던 주․객관적 취약성 때문에 초래된 것이었다. 운동의 위기를 가져온 요인 가
Ⅰ. 박헌영의 생애
박헌영은 충청남도 예산(禮山)에서 태어났다. 1919년에 경성고보(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3.1운동 이후 상해로 건너가서 1921년 이르쿠츠크파 고려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또한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책임비서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22년에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코민테
Ⅰ. 김기림 알기
ⅰ. 약력
김기림 (金起林 : 1908~ ? )
1908년 함북 학성 출생
1921년 서울 보성고보 중퇴
1930년 일본대학(日本大學)문학예술과 졸업.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
『조선일보』에《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발표, 등단
1931년『조선일보』평론《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문제》발
함북경성 출생. 1936년 생활난으로 중앙불교전문을 중퇴하고, 《시인부락》 동인으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형화(螢火)》 등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만주로 건너가 소학교 훈도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40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마음》으로 당선하였다. 8 15광복 당시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