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민족통일전선 결성에는 동의했지만, 당파적 이해와 요구가 결합되면서 완전한 합의점을 찾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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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항일과 항일투쟁
1910년대 지방유생들의 국내에서의 항일투쟁은 여러 갈래에서 전개되었으나 이 글에서는 의병투쟁과 비밀결사인 독립의군부의 조직과
항일운동으로 민족의 항쟁정신이 계승되어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횃불이 되었던 것이다. 일본은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우리를 침략하였고, 식민지지배를 통해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 하였는데도, 우리는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여 교훈을 얻는 것과 식민정책(민족혼 말살, 민족분열)의 치유와
투쟁적 요소와 사회적 해방에 대한 지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족운동의 한흐름으로 분류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20년대 초기부터 각종 청년단체, 농민단체, 노동자 단체를 조직하여 이들에게 계급의식과 아울러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그리고 26년의 6.10만세운동, 29년의 광주학생운동에서서와
문호개방과 대외통상의 필요성은 이미 북학파 실학자 인 박제가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또 개항전에도 김정희(金正喜), 박규수, 오경석 등 일부 선각자들은 청 의 양무운동과 양무론자들의 저술을 통하여 세계정세의 대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식견을 일부 청년들에게 전파하고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