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바람이 일었다. 이 바람을 타고 여성 작품들이 대량으로 출판되고 여류시집들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중국 시단의 시대적 바람은 조선에 출정한 명군사와 문사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중국문단의 이러한 여류 시 바람은 허난설헌시를 더욱 빠르게 중국대륙에 전파시켰고, 중국문인들
그녀를 더욱 선각자로서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에 의한 김성립과의 정략결혼을 시작으로 그녀의 삶은 더없는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데, 이런 환경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 울분과 한을 시를 통해 발산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여기서는 허난설헌의 여러 가지 작품을 통해 그
Ⅱ. 허난설헌의 생애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으로 조선 명종 18년(1563) 강릉 초당리에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허난설헌의 고향인 강릉 지방은 예부터 태백산맥의 정기를 받아 큰 인물이 많이 태어났다고 한다. 아우 허균도 자신이 강릉에서 태어난 것을 자
. 그녀의 형제인 허성․허봉․허균은 모두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그 중 허균은 <홍길동전>으로 유명하다.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운 난설헌은 여덟 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음으로써 발군의 시적 재능을 보여 여신동이라 불렸다.
사회적 성공을 보장받은 남성과의 결혼을 꿈꾸면서 자신의 성적 매력을 가꾸어 가는 모습에서 이 비극성은 심화된다.
② 남성우위적인 이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을 열등시하여 성적 대상화가 가능하다고 여기면서 어떤 사람과의 관계로서의 성이 아닌 물상화 된 대상에 대한 일방적 행위로 성을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