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의 원천이 되는 중요한 바탕이며 재료이다. 그러나 난설헌은 이러한 원천에서부터 심각한 제한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규수시인” 으로서의 그녀는 오로지 책으로부터 간접경험의 세계를 발굴하여 자기 자신의 시 창작을 위한 경험의 원천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허난설헌의 시
1. 허난설헌의 생애와 작가세계허난설헌은 1563년(명종 18년)에 태어나서 1589년(선조 22년) 3월 19일, 27세로 사망했다. 난설헌이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1592년, 선조 25년 발발)이 일어나기 직전의 조선 중기로서 당시 조선의 정세는, 정치적으론 연산군 이후 명종에 이르는 4대 사화와 훈구, 사림(士林)세
조선조 여류문학의 특질은 무엇인가?
이것을 구명하려면, 먼저 국문학 전반에 걸친 특질의 모색이 앞서야 할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先學들의 언급이 있었다. 李熙昇 박사는 '여백과 여운', 趙潤濟 박사는 '은근과 끈기', '애처로움과 가냘픔'에 '두어라'와 '노세'를 추가했고, 金東旭 교수는
허난설헌은 작품성이나 완성도에서 쌍벽을 이루며, 두 시인 모두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판이하게 다른 환경과 삶의 행로를 걸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시세계는 독자성을 지녀 극명한 차이점을 보이게 된다. 황진이는 남성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을 읊었고, 허난설헌은 여인들의 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다. 호는 교산 또는 성소라 하였다. 손곡 이달의 제자로 허균은 시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학식이 풍부하였다. 아버지 초당 허엽은 서경덕의 학통을 이어 받았으며, 형들인 허성․허봉도 유명한 학자이자 문인들이었다. 누이인 허난설헌은 시에 능통한 여류시인이었다. 이러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