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협회 명예회장,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됨.
특히 월간 시 전문지 『시문학』의 창간에 관여하게 되었으며, 후에 그 잡지를 인수, 편집인 겸 주간으로 활동하면서 시문학 진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철원 북쪽 DMZ의
2. TV, 인터넷 등을 통한 시의 대중화
1990년대 이후 문학인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를 양산하는 문학잡지 또한 일백 여종이나 증가했다. 그리하여 각종 문예지에서는 매월 수백 명의 신인들을 배출하였고, 시집, 수필집 등 단행본들은 하루에도 수십 종씩 쏟아졌다. 1990년대에는 전국 대학의 문예창
4.4.2. D.M.Z 문학운동
비무장지대는 우리 문학사에 있어서 끊임없이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90년대 우리 문학사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DMZ’가 분단문학의 원초적인 핵으로 인식되었던 시대였다.
D.M.Z 문학운동이란 분단통일이나 계급모순, 민족모순과 같은 단순논리가 아니었다. 이 문학의
작동되고, 또 그제야 전파를 통해서 방송을 들려줄 수 있는 물건이다. 다시 말해 단추를 누르지 않으면 라디오는 그냥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사랑의 의미를 그저 편하고 가볍게만 받아들이고 사랑 자체를 일회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현대 사회의 풍토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한국 사회에도 탈이념화, 탈정치화가 두렷하게 나타난다. 인문학적 담론의 무게 중심은‘이념’에서 ‘욕망’으로, 거시 담론에서 미시 담론으로, 급진적 좌파주의에서 다원주의적 자유주의로 변해갔다. 90년대에 이른바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화기의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