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풍물의 기원을 찾으려면 저 멀리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짐승을 잡거나 농사를 지은 후 하늘에 감사를 지내고 더욱 많은 생산을 기원하는 제천의식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 행해지던 것을 풍물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물론 원시적인 악기나 장단은 이때부터 만들어졌을
Ⅰ. 사물놀이의 등장
건축가 김수근이 1977년에 지은 `공간사랑`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곳은 그가 문화의 터전을 일구기 위한 장소로써 마련한 곳이었으며 많은 예인들이 즐겨 찾곤 했다. 사물놀이의 탄생도 이곳에서 비롯된다.
늠름한 모습의 청년들이 스스로 `남사당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첫 사물
농악ꡑ은 일제침략기에 침략자들이 그들의 탈놀이인 能樂(노가꾸)의 발음을 본 떠 만들어 낸 말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농악을 본떠 쓰는 Farmer`s Band Music은 얼마나 기막힌 말인가, 풍물을 영어로 표기할 때는 마치 김치를 ꡐKimchi`로 쓰는 것처럼ꡐPoongmul` 또는 ꡑPoongmul Gut`으로 쓰는
농악ꡑ을 발표하고, 5월에는 최종석이 이광수(현 민족음악원장)로 교체된 뒤 이들은 계속 연구하여 풍물굿에 뿌리를 둔 사물놀이라는 영역을 개발하였고 1982년까지 271회라는 놀랄만한 해외공연을 하면서 세계 곳곳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렸다. 그러나 ꡐ사물놀이ꡑ의 구성원 사이에 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두들소리`의 모습과 방식 또한 `마을풍물굿`과 `무굿` 그리고 `전문연희패` 등의 그것으로 크게 나뉘게 된다. `마을풍물굿`은 우리가 흔히 농악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서 앞서 말한 굿의 전통이 가장 잘 살아서 있는 형태로 최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