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경기.충청]가락`을 발표했고 그날 공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들이 보여준 진기하고도 신명나는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물놀이라는 명칭을 갖지 않은 채 가진 이날의 공연은 사물놀이 탄생의 서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첫 공연 2개월 후 같은 장소에서 사물놀이의 성립을 알리는 제2회 연
사물놀이의 모태가 된 것은 `전문유랑예인집단`인 `남사당(男寺堂)`이다.
여러 `굿`판-어떤 형태로든 사람의 뜻과 정성을 모아 제사를 지내고 놀이를 하는-에서 우리 조상들의 삶과 함께 하여 왔던 우리의 두들소리는 일제 36년 간의 강점기간 동안과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등과 그 이후 우리민족이 거
서 론
‘사물놀이’는 1978년 2월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창단을 한 놀이패의 명칭이다. 그런데 이제는 놀이패에 그치지 않고, 네게의 타악기인 꽹과리, 장고, 북, 징으로 연주하는 풍물굿을 가리켜 사물놀이라 일컬음으로써 예술 갈래를 지칭하는 말로 변모되었다.
사물놀이가 예술갈래 또는 국악갈
굿의 여러 기능 가운데 유희 위주의 판굿을 지칭하는 의미이므로 1980년대 우리문화부흥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에 정착된 ꡐ풍물굿ꡑ으로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ꡐ사물놀이ꡑ는 1979년에 젊은 풍물꾼들이 풍물가락을 새롭게 짜 공연을 한 뒤 생긴 말로, 고도의 기능으로 무대에서 연주
사물을 리드하는 악기이다. 풍물굿에서 보면 꽹과리는 가락을 창출하고 이끌어나간다. 전라좌도의 경우와 타 지방의 경우가 조금은 다르다. 즉 가락에서 장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꽹과리가 가락을 이끌어가고 주도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물놀이에서 쇠의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