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호와 강준흠, 이기경에게 귀양이 풀릴 수 있도록 항복을 빌고 동정을 받도록 애걸해보라는 아들의 편지에 대한 정약용의 답신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란 때로 물고기를 버리고 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만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 정도의 잗다란 일에 잽싸게 다른
却說王延政被虜至金臨, 入見唐主。
각설왕연정피로지금림 입견당주
각설하고 왕연정이 포로로 잡혀 금림에 이르러서 들어가 당나라 군주를 알현했다.
唐主降?赦罪, 授爲羽林大將軍, 所有建州諸臣, 一槪赦免。
당주강칙사죄 수위우림대장군 소유건주제신 일개사면
당나라 군주는 칙령을 내려 죄
1762(영조38)년 6월 16일 사시(巳時)에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京幾道 廣州郡 草阜面 馬峴里)즉 오늘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정재원(丁載遠)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兒名)은 귀농(歸農)이라 했다.
다산은 부친에게서 글을 배웠고 부친의 임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닦았다. 4세에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