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의 영향으로 산지에 위치하게 되고, 이로 인해 대칭의 규범은 깨져서 진입로와 일주문, 그리고 천왕문을 잇는 축은 일직선은 아니며, 누문과 대웅전의 중심축 역시 일직선에 놓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예 범어사, 화엄사, 해인사, 불국사)
Ⅱ. 화엄사의 위치
구례(求禮)지리산 동쪽 기슭에 위치
화엄사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서기 544)에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서 온 연기스님에 의해서 창건된 천년의 고찰이다.
이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셔와 4사자 3층 석탑(불사리공양탑)을 세우고 그 안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4사자 3층 석탑은 화엄사의 창건주인 연기조사와
동일 혹은 인접지역에서 유사한 시설과 개발이 중복되는 경우는 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을 적절하게 조절하거나 통제하여 지역 특성에 가장 적합한 시설 그리고 거점개발방식의 관광개발을 실시함으로써 중복투자를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지역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갖출 수 있게 된다.
화엄 10찰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초기에는 탄문(坦文, 900~975) 스님과 관련되어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찰이었음이 탄문의 탑비 명문에 의해 밝혀졌다. 이후 보원사는 화엄종의 성쇠와 궤를 같이 하여 고려 후반 이후로 사세가 기울어져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큰 것은 조계종, 화엄종,
자은종, 천태종이었다. 특히 전남에는 조계종이 현 송광사(松廣寺)를 근본도장으로 펼친 선불교중흥(禪佛敎中興)을 위한 정혜결사(定慧結社)와 화엄사상(華嚴思想)을 펼치기 위하여 천태종(天台宗)이 강진
만덕사(현 白連寺)를 중심으로 한 백연결사(白連結社)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