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였다. 노파를 묻어 주며 나는 은주에게 재차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고향에 돌아가겠다면 방을 계약할 돈 중 5만원쯤은 보태어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 때, 조그만 체구의 황구(黃狗)가 덩치 큰 수캐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받고 죽어 갔다. 그것을 본 은주는 이 곳을 떠나겠다고 외쳤다.
)》(1978), 《황구(黃狗)의 비명》(1975), 《신궁》(1977), 《혜자의 눈꽃》(1978) 등이 있고, 중편소설집에 《낙월도》(1972) 등이 있고, 장편소설집에 《낙과(落果)를 줍는 기린》(1978), 《깡돌이의 서울》(1973) 등이 있다. 꽁트집 《대중탕의 피카소》(1983), 수필집 《꽃병 물좀 갈까요》(1979) 등이 있다.
황구의 비명」(1974)과 장편 「사계의 후조」(1976)로 문단의 중견 작가로 등극.작품 세계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압축된 문체와 민중적인 언어로, 구성상에서는 다소 상징적인 암시적 짜임새를 갖추면서 유려하게 형상화하며, 이를 통해 강한 주제 의식을 표출하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음. 작품집『
황구의 비명」(1974) 과 장편 「사계의 후조」(1976)로 문단 중견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작품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압축된 문체와 민중적인 언어로, 구성상에서는 다소 상징적인 암시적 짜임새를 갖추면서 유려하게 형상화하며, 이를 통해 강한 주제 의식을 표출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
'달궁' 시리즈를 통해 기법 실험의 한 극단을 보여 주었다.
그 밖에 냉소주의적인 입장에서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고원정의 '거인의 잠' 이나, 역사 소설의 기법으로 우리 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려 낸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등도 소재의 확대를 가져온 부류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