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황룡사9층목탑의 건립과 소실
그림 <신라황룡사복원 모형도>
황룡사지는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시(慶州市) 구황동(舊皇洞)에 있는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절터로, 사적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황룡사는 신라칠처가람지(新羅七處伽藍址)의 하나로 규모나 사격(寺格)에 있어 신라 제일의 사찰이
목탑 터의 주춧돌, 장육삼존이 있던 대좌를 비롯해 넓은 터를 채우고 있던 각종 건물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황룡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백제지역의 익산 미륵사지 발굴조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고학적 발굴사상 최대규모, 최장기간 진행되었다. 그리고 황룡사 일대에 원래 연못이었음이 발굴조사 결
나, 법흥왕 때에 이르러 이차돈이 순교한 뒤부터 공인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것은 신라 시대 때의 불교의 사상과 그 사상의 결정적 요소라 할 수 있는 황룡사에 대해 논하려고 한다.
지금은 그 위용이 사라진지 오래이나 건물과 탑이 있었던 주춧돌만으로도 그 엄청난 규모를 짐작
신라 ꡒ황룡사9층탑ꡓ 의 건립을 위한 아비지의 관여, 그리고 일본 초기 사원의 창립을 위해 사공이나 와전사 등이 도거한 역사적 사실 등이 백제에서의 사탑 건립의 융성과 그로 말미암은 석조 미술의 발생 배경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전통과 기공의 연마는 그 말기에 이르러 석재로서 목탑을
나라는 초기 목탑과 전탑에서 발전된 석탑이 주로 남아 있다. 백제시대의 석탑은 불교 수용 초기의 목탑을 본따서 재료를 석재로 바꾸어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부여 정림사지석탑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도 옛 백제 지역에서는 백제시대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