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당(庇雨堂)이라고 하여 청빈한 삶의 중요성을 알렸다고 한다. 이에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청빈의 정신을 살려 다리 이름을 비우당교라고 하였다. 복원된 청계천에는 12개의 분수가 있는데 그 중 비우당교의 터널분수는 야경이 뛰어나고, 가족들과 함께 문화공연도 즐길 수 있다.
그림 비우당교
청계천의 탄생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 청계천은 자연상태의 하천이었다. 따라서 청계천은 서울기후의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비가 적은 봄, 가을은 대부분 말라있는 건천이었던 반면,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 우기에는 조금만 비가 와도 물이 넘쳐 홍수가 날 정도로 건기, 우기에 따라 유량
역사가 시작되었고, 일제시대에 복개가 시작되어 지난 50여년간 청계천은 지하에 묻혀있었다. 하지만 이 복개로 인하여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 이를 보수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되게 되자, 당시 이명박 서울 시장 후보에 의해 복원사업이 언급되었다. 이는 여러 진통을 겪은 끝에 2003년 7월 1일 청계
문화를 구분 짓는 잣대이기도 하였다. 마치 지금의 한강처럼 말이다. 또한 청계천은 하수도로서의 역할 또한 담당하였다.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인데, 이것은 배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가해준 물줄기, 즉 대규모 인공하수도를 뜻하는 말이다. 즉, 청계천이란 이름이 붙여지기 전까지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