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대군의 추천으로 원각사의 낙성회에서 찬시를 바쳤다. 그가 머물렀던 금오산실은 당호가 ‘매월당’이며 이곳에서 그는 31세 때부터 37세에 이르는 황금기를 보내면서 『금오신화』를 비롯한 수많은 시편들을 남겼다. 1481년 돌연 머리를 기르고 안씨를 아내로 맞아 환속하는 듯 했으나 이듬해 폐비
효령대군의 청으로 잠깐 원각사(圓覺寺) 낙성회에 참가한 일이 있으나 누차 세조의 소명(召命)을 받고도 거절하여,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고, 『산거백영(山居百詠)』(1468)을 썼다. 이곳에서 6~7년을 보낸 후 다시 상경하여 성동(城東)에서 농사를 지으며 『
Ⅰ. 개요
김시습의 세계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일원론적 주기론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애초에는 주리론에 정통했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에 그의 세계관을 수정하게 된다. 금오신화 등의 소설작품이 아닌 그의 논설에는 주기론이 구체적으로 이론이 제시되고 있으며 이
Ⅰ. 로마의 귀신관
‘이성적인 혼이 세 종류, 즉 하늘의 신들의 혼과 공중의 마귀들의 혼과 지상의 인간들의 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던 사람들의 견해에 대하여’ 알아보자. 그들의 주장은 귀신이 인간보다 더 높은 장소를 점하고 있으므로 해서 “인간보다 귀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