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론] 금오신화 작품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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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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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작가적 배경
(1) 시대
(2) 생애

2. 작품의 형성과정

3. 작품의 내용과 의미
(1) 만복사저포기
(2) 이생규장전
(3) 취유부벽정기
(4) 남염부주지
(5) 용궁부연록

4. 창작기법

5. 금오신화의 특징

6. 문학사적 의의

7. 금오신화에 나타난 종교관과 도선 사상

본문내용
1. 작가적 배경

(1) 시대

조선 초에는 사대부계층 사이에서 권력과 부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심화되었고, 그에 대한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집권층과 여기에서 탈락하는 실세층이 생겨났다. 또 피지배층 중 농민은 압제와 수탈을 자행하는 지배계층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상업이나 상업적 농업· 상업적 수공업 등으로 새로운 형태의 부를 축적하는 시민도 토지를 주 생산 수단으로 한정하고 이를 지배함으로써 부를 독점하려는 지배계층과 대립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집권에 실패한 사대부나 각성하기 시작한 시민· 농민들은 이미 수립된 질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상으로 삼아 배격하려는 자기주장을 갖게 되었고, 이들이 대상세계로 삼는 지배계층은 이러한 주장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맞서게 되었다. 그래서 자아와 세계가 상호 우위에 입각하여 대결하는 양상을 그리는 소설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 첫 작품이 김시습의 『금오신화』이다.
(2) 생애

김시습은 1435년(세종 17년)서울에서 태어나 1493년(성종 24년) 59세로 생애를 마쳤다.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 청한자(淸寒子)· 벽산(碧山), 법호는 설잠(雪岑), 시호는 청간(淸簡)으로 원호, 이맹전, 남효온, 조려, 성담수와 함께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사람이었다. 김시습은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고, 열다섯에 모친을 잃게 된다.
1455년,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하고 전국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북으로 안시향령(安市香嶺), 동으로 금강산과 오대산, 남으로 다도해(多島海)에 이르기까지 9년간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탕유관동록(宕遊關東錄)』,『탕유호남록(宕遊湖南錄)』등을 정리하여 그 후지(後志)를 썼다. 그리고 1463년(세조 9년) 효령대군(孝寧大君)의 권유로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佛經諺解) 사업을 도와 내불당(內佛堂)에서 교정 일을 보았으나, 1465년(세조 11년) 다시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입산하였다. 2년 후 효령대군의 청으로 잠깐 원각사(圓覺寺) 낙성회에 참가한 일이 있으나 누차 세조의 소명(召命)을 받고도 거절하여,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고, 『산거백영(山居百詠)』(1468)을 썼다. 이곳에서 6~7년을 보낸 후 다시 상경하여 성동(城東)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거백영 후지』(1476)를 썼으며, 1481년(성종 12년)에 환속(還俗), 안씨(安氏)를 아내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1483년 다시 서울을 등지고 방랑의 길을 나섰다가 1493년 충남 부여(扶餘)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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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쾌제 외. 『고소설연구사』. 도서출판 월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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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섭 외 2인, 『국어-고전문학의 이해와 감상 2. 산문(Ⅰ), (주)문원각, 2000,
장효현 외 4인,『교감본 한국한문소설 전기소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7
조동일 「초기소설의 성립과 초기 소설의 유형적 특징」『한국소설의 이론』지식산업사 1977
최현옥, 「금오신화 연구」 ,경남대학교 대학원, 1984
한국고전소설편찬위원회. 『한국고전소설론』. 새문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