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1443년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되어 비로소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표기 할 수 있게 되었다. 훈민정음의 창제가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마디결과 한글문화 부림 그리고 집현전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제작 얼개 따위를 바
후자에 대하여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형체에 대하여 고대글자 모방설, 고전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올 정도로 구구한 억설이 있었으나 이 책의 출현으로 모두 일소되고 발음기관상형설이 제자원리였음이 밝혀졌다.
. 후자는 예의·해례·정인지 서문 등 3부분 33장으로 되었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고 해례는 정인지,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최항,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집현전 학사가 집필하였다. 정인지가 대표로 쓴 서문에는 1446년 9월 상순으로 발간 일을 명시하고 있어 후일 한글날 제정의 바탕이 되었다.
기원설, 창호상형(窓戶象形) 기원설, 태극사상(太極思想) 기원설’ 등이 있었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원본이 발견(1940년 7월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현)됨에 따라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기원설들로 좁혀지고 있다. 본고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고전기원설’과 ‘발음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