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일본에 줄기차고 거세게 저항했던 흥선대원군의 민족주의적 성격을 의도적으로 폄하했다는 식민사관의 유산이라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병인박해의 피해를 입은 한국 천주교회, 안동 김씨, 여흥 민씨 가문 등 흥선대원군과 관련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므로 공정한 평가는 어렵다.
Ⅰ. 흥선대원군의 집권
조선왕조의 양반관료체제는 19세기 들어와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세도정치 하에서 과거제도는 문란해지고 관리들의 불정부패는 극심하여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인사행정은 혼란해져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졌으며, 뇌물로 관직을 획득한 지방관의 탐학과 가렴주구로 농민들의
Ⅰ. 흥선대원군의 생애
대원군은 영조의 현손 남연군구의 넷째 아들이며, 조선 제 26대왕 고종의 아버지다. 철종때에는 안동 김씨가 세도권을 잡고 왕실과 종친에 갖가지 통제과 위협을 가했으므로, 호신책으로 시정의 무뢰한들과 어울려 파락호의 생활을 하였다. 안동 김씨 가문을 찾아다니며 구걸
Ⅰ. 흥선대원군의 생애
대원군은 영조의 현손 남연군구의 넷째 아들이며, 조선 제 26대왕 고종의 아버지다. 철종때에는 안동 김씨가 세도권을 잡고 왕실과 종친에 갖가지 통제과 위협을 가했으므로, 호신책으로 시정의 무뢰한들과 어울려 파락호의 생활을 하였다. 안동 김씨 가문을 찾아다니며 구걸
Ⅰ. 대원군(흥선대원군) 집정의 배경
대원군이 집권하기 전 1860년대 초반 조선왕조를 둘러싼 상황은 역사상 보기 드문 위기였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이 복배로 중첩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미 서양에 대해 개방정책을 택하고 최초의 근대화 운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일본은 명치유신이라는 혁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