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삼두정치 이전의 로마
포에니 전쟁의 승리와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로마는 지중해의 왕자로 떠오르게 되었으니 시리아를 정복하여 속주로 삼았고 마케도니아를 정복하였으며, 기원전 146년에는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니 지중해는 완전히 로마의 손아귀에 들게 되었다. 이제 에스파냐에서 소아시
들어가면서
그라쿠스의 개혁이후 원로원 귀족들의 권위는 무너졌고 정파 간의 경쟁과 이익추구에 몰두한 나머지 공화정의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처하지 못했다. 그 뒤 집정관이 된 군사령관 마리우스와 술라의 독재정치와 내란이라는 혼란의 시기를 겪고 이어진 삼두정치와 카이사르의 독재는 결국
정치가들의 출몰로 인하여 흔들리기 시작한 공화정의 기반은 이를 지키려는 자들과 이를 이탈하고자 하는 자들로 인해 수많은 죽음과 피의 대가를 통해 몰락해갔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로마 공화정 자체는 삼두정치의 출몰에서부터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제 1차 삼두정치가 나오면서부터 공화정의 원
정치적 후계자로 나선 것이다. 후계자로 나섬과 동시에 옥타비아누스는 암살자들을 유죄로 규정하고 추방하는 법을 성립시킨다. 옥타비아누스의 의외의 권력 장악력에 맞서 안토니우스는 레피두스와 연합 전선을 형성한다.
3. 2차 삼두정치의 성립
43년 11월, 북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2차 삼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