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사적으로는 이때 중인(中人)과 평민 계층을 작자로 하는 ‘여항(閭巷)문학’이 등장한다. 본래 시조는 한시(漢詩)를 다루는 데 능숙한 사대부 중에서도 제한된 계층에서 향유되던 장르였다. 그러나 양반보다는 낮은 신분이되 양인에 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교양을 갖고 있던 중인들이 자신들의 생
시조에 작가층이 사족층 내부에서 다층적으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3) 신흠 시조의 창작배경
신흠의 시조는 계축옥사 이후에 겪게 되는 정신적 혼란과 충격으로 배태된 것으로서 그의 시조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 계축옥사에 대한 그의 정신적 충격을
Ⅰ. 고려시대 시조 부벽루 작품분석
昨過永明寺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暫登浮碧樓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城鞏月一片 성은 텅 빈 채로 달 한 조각 떠 있고
石老雲千秋 오래된 조천석 위에 천 년의 구름 흐르네.
麟馬去不汳 기린마는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데,
天孫何處遊 천손은 지금 어느
Ⅰ. 조선시대 시조 어부사시사 작품분석
압 에 안 것고 딋 뫼에 비 다 [1]
밤 물은 거의 지고 낫 물이 미러온다
江村(강촌)에 온갓 곳이 먼 빗치 더옥 조홰라
東風(동풍)이 건듯 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 [3]
東湖(동호)를 도라보며 西湖(서호)로 가쟈스라
두어라 압 뫼히 지나가고 뒷 뫼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