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 중엽은 영지주의의 시대이다. 135년 예루살렘의 2차 함락과 193년 세베르 왕조의 즉위로 구별되는 두 세대 동안에 교회는 점진적은 헬라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났던 중요한 이단 가운데 하나가 영지주의 운동이다. 130년에서 180년 사이에 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던
영지주의는 결국 그리스도교 교훈을 부인하지 않고, 다만 그 교훈에 더 합리적인 설명을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시대의 교회와 공통되는 것은 드물었다. 그들의 목적은 도덕적 생활 보다는 오히려 지적인 계몽에 있었다. 그들의 욕망은 죄의 부패에서 보다는 오히려 물질계의 구속에서
, 참여에 의한 인식을 뜻한다. 이것은 부부사이의 관계처럼 친밀한 결합이다. 이것은 과학적 지식과 대조를 이룬 실존적 인식이며 하나 됨의 경험이며, 구원의 경험이다. 물론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의 인식적 기능을 신적인 것에의 참여로서 이해하고 있었다.
Ⅰ. 서론
아무런 원인도 없거나 이해 가능한 질서 속에서 생겨나지 않은 원인을 가지고 발생한 사건을 우리는 “우연”이라고 부르고, 필연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운명의 견해에 따른다면 ‘로마제국과 다른 모든 왕국의 기반은 우연적인 것도 아니고, 별들의 위치에
그는 참된 영지주의자들은 ‘우박처럼 명백하다’라고 표현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석탄처럼 불투명하다’라고 비유로 말한다. 그리고 “참된 영지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은 성경에 명확하게 표현 될 때 성경에서 기초를 있다”고 하였고 “참된 영지주의자들은 이 기초위에 세워진 상징적 건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