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에서 보면 아무래도 직접·간접으로 전화의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은 조선이었고 그 후유증은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본문에서는 그러한 왜란의 영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우선 직접적인 피해국인 조선과 가해국인 일본, 아울러 참전국인 명나라의 순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혜경, 『조선왕조 오백년사』, 청솔, 1996, 279~318면 참조.
이러한 평민들의 자각은 문학에도 반영되어 조선후기의 평민문학을 탄생시켰다. 그 출발점에 선 문학들은 대체로 전쟁에서 비롯된 충격들을 기록하거나, 그 체험을 변용시켜 표현하는 방식을 취했다. 대
●임진왜란 배경 및 원인
1590년 일본 열도의 정권을 잡고 오랜 전국 시대를 끝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간파쿠(關白) 자리를 그의 양자인 도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에게 물려주어 일본의 내정을 맡게 하고 스스로는 타이코(太合)라 칭하며 그의 야망을 동아시아 정복으로 확장하려 했다. 한편 15세기
임진왜란은 1592년 (선조 25년) 4월 13일 부산포에 일본이 밀어닥치면서 발발하였다. 왜군의 선발대인 소서행장이 이끄는 1만 8천의 병력이 부산성을 공격해 오면서 7년 동안에 걸쳐 일어난 미증유의 대사건으로, 국내․외의 정세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살육과 파괴 등으로 얼룩진 임진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조선에서는 조선 초기에 있었던 전쟁이후 전쟁이라고 불릴만한 큰 전쟁이 없는 상태로 평화 시기를 맞는다. 평화 시기가 계속되자 평화 시대에 군사를 키우는 것은 하나의 화근이 된다고 생각하여 군사력 증강에 소홀히 하게 된다. 그 결과 지휘관들은 군포를 받고 현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