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이 사분제이다.
이렇게 조선시대 신분사 연구에 있어 양분제와 사분제가 대립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법적 제도에는 양천(良賤)만 규정된 것에 비하여 실제적으로는 양인(良人) 신분에서 양반․중인․상민이 별도로 구분되어 진 것을 당시의 사료나 사회관습에서 찾아볼수 있기때문이다.
조선은 고려의 멸망 요인을 찾고 수정해 좀 더 완벽한 체제를 만들고자 했다.
그들이 생각한 고려의 주요한 멸망 요인은 신분제의 혼란이었다. 신분제가 흔들리며 각 계층의 역할을 다 하지 못했고 결국 국가재정의 파탄, 사회의 불안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본론에서는 이를 위해 조선 사대부층
조선시대의 공예는 관공장(官工匠)인 경·외 공장들에 의해 나뭇결의 자연스러운 조화미와 비례미·형태미 등을 특징으로 하는 목칠공예를 비롯하여 금속공예·염직공예·피혁공예·초고공예(草藁工藝)·지공예(紙工藝) 등 다양한 종류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장인들에 대한 신분차별과 공역(公役)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