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스스로도 이러한 고리의 노예로 남기보다는 자신의 인생과 사회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과감한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며, 그것을 새로운 학생운동으로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Ⅱ. 1940년과 1950년대의 학생운동
해방이 되자 학생들은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발족된 ‘건준’의
학생운동을 독점하였다. 그 후 신탁통치 반대운동과 국립 서울대학교 설치안을 둘러싼 대립을 계기로, 우익계 학생들이 세력을 확장하여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우파 학생운동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어용화, 관제화되면서 일반학생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3)1960년대
그
우리가 왜 학생운동사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우리는 학생입니다
아직 민주주의는 완전하다 할 수 없습니다
학생운동의 주역은 우리의 선배입니다
가까운 역사 역시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중반 – 한일회담 반대
국회의사당 ‘대일굴욕외교반대’ 유인물
3월 30일 학생과 대통령
1960년대 후반에는 학생운동의 전개와 더불어 제 2차 페미니즘도 시작되었다. 2차 페미니즘은 남녀평등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적인 남녀평등을 지향하였다. 페미니스트들은 대개 대중문화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 입장을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은 1968년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에 대한 공격
년대를 거치며 미국의 사회사업계는 지역사회 인보관 (settlement house)과 사회개혁 운동을 펼쳤던 Jane Addams보다는 C.O.S 운동을 통해 사회사업의 전문직 정체성을 찾는 Mary Richmond 쪽으로 흘러가 버렸다. 사회복지학도들에게 쉽게 얘기하면 social work의 두가지 접근(dual approach)중 ‘사회환경’보다는 클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