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총선에서 야권 통합의 필요성 제기
2) 지역주의투표 현상
양 김은 물론 노태우 후보와 김종필 후보까지도 출신지에서 몰표
노태우 : 대구 - 경북에서 유효표의 2/3 이상
김영삼 : 부산 - 경남에서 과반수 득표
김대중 : 호남에서 80% - 93%, 대구에서 2.6%
호남에서 김대중 후보의 득표율이 가
노태우를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태우는 태생적으로 5공 핵심 세력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김영삼, 김대중 등 인기 있는 민간 정치인들과 13대 대선을 앞두고 경쟁해야 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2) 1987년 대선정국과 노태우의 어부지리
1987년 12월 26일 13대대통령
대통령의 구속처벌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일부 학생들은 ‘전두환 체포결사대’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야당 역시 전 대통령의 증언 없이는 5공 청산의 종결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결국 권력 내부의 갈등 해소와 여론에 밀려 노태우 정부는 5공 비리를 전담할 특별수사부를 설치하였고, 여
노태우 후보가 36.6%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북한은 제 13대 선거 이전에 반 군사독재 캠페인 이종석은 “사실 북한은 제13대 대선과 관련하여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겉으로는 남한의 민주화와 자주화를 외치며 양김씨 통합과 노태우의 낙선을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의 실
Ⅰ. 서 론
21세기를 새롭게 시작한지 벌써 6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시점에서 오늘의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대변혁을 겪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시점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미리에 올바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과거사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며, 과거를 살펴봄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