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사건을 일으킨 9연대 3대대는 거창에 주둔하였다. 51년 2월 초순 연대본부에서는 작전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연대장인 오익경 대령은 사단작전회의에서 지시된 사항을 설명했다. 그 내용은 “이번 작전은 전 사단병력이 총동원되는 작전으로서 견벽청야라는 사단의 기본작전 개념과 그것에 기초한
2. 거창양민학살사건과 국민방위군사건거창양민학살사건이란,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된 후 빨치산 공세가 강화되자 후방의 빨치산과 대결하던 국군 가운데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 중이던 11사단 9연대 3대대는 공비와 내통하였다고 하여 2월 10일 내탄 부락 골짜기에
2. 한국전쟁 : 냉전과 이데올로기 갈등의 유산
1) 전쟁의 발발과 원인
한국전쟁을 보는 시각은 ‘소련의 사주로 김일성이 남침을 했다.’는 전통주의적 시각과 미국과 이승만 정부가 음모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전쟁을 도발하도록 하였다는 식의 간접적 상황증거들을 이용하여 원인을 유추하는 수정
사건
6․25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6․25전쟁 중 최초의 집단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은 미군이 아닌 한국군 특무대(CIC)와 경찰에 의해 훨씬 잔혹하고 조직적이며 계획적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