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의 이슈]6.25전쟁과 이승만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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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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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5.10 선거와 5.30 선거

2. 거창양민학살사건과 국민방위군사건

3. 부산정치파동

4. 발췌개헌

5. 제2대 대통령선거


본문내용
2. 거창양민학살사건과 국민방위군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이란,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된 후 빨치산 공세가 강화되자 후방의 빨치산과 대결하던 국군 가운데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 중이던 11사단 9연대 3대대는 공비와 내통하였다고 하여 2월 10일 내탄 부락 골짜기에서 청장년 136명을, 11일 박산계곡에서 527명을 중화기로 무차별 학살하였다. 그해 3월 29일 이 사건이 국회에서 거창군 출신 국회의원 신중목의 보고로 폭로되었다. 국회는 조사단을 파견,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려 하였으나 당시 경남지구 계엄사령부 민사부장이었던 대령 김종원은 국군 1개 소대를 공비로 가장시켜 위협적인 총격을 가함으로써 조사를 방해하려한 사건이다.
국민방위군사건이란, 1951년 1월 후퇴작전 때 제2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 방위군의 고급장교들이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하여 착복함으로써 아사자와 동사자가 속출하였는데, 사망자 수만도 90,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 참상은 국회에서 폭로되어 진상조사단이 구성되었다. 국회조사위원회의 보고에 의하면 1950년 12월 17일부터 51년 3월 31일까지 유령인구를 조작하여 착복한 금품만도 현금 23억 원(圓), 쌀 5만 2천 섬이나 되었다.
5.30선거 미묘한 세력분포를 형성하던 중 국회 정부의장 선출을 계기로 그 이후부터 의원 각자간의 헤어졌다가 모였다가 하는 일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원내에는 여당격인 한청, 국민회, 대한국민당 등의 합동체인 신정동지회와 야당격인 국민당간의 각축전이 전개되었으며 결국 신정동지회가 70명 의석을 확보하여 제1거대 세력으로서 이승만을 지지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민족정기구현회 웹사이트 (http://www.koreakjh.com)
6.25전쟁 관련 블로그 (http://koreanwar60.tistory.com/94)
중앙선거관리 위원회 (http://elecinfo.nec.go.kr)
네이버 백과사전
김한종 외5명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주)금성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