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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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희망의 목소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희망의 목소리.
I.예레미야의 전승.
포로기의 현실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여 이스라엘의 희망을 표현했던 성서 본문은 예레미야의 전승, 특히 그 중에서도 29-33장이다(이들 장들안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가능성은 46-51장에 나타나는 바빌론 및 이방 국가들의 부정적인 붕괴와 짝을 이룬다.)29-33장의 자료들은 희망의 진술들이 한데 모아지도록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
예언자의 말은 포로기를 걸쳐 더욱 확장되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을 먼저 사랑하셨던 하나님께서(참고. 신7:6-11)포로기 때에도 그리고 그 후에라도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30-33장의 풍부하고도 다양한 이미지들 속에서, 예레미야의 전승은 포로기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삶을 이스라엘에게 주기로 결정하신 분으로 야웨를 묘사한다. 이러한 전승이 모세에 대한 기억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미래의 희망은 시내산 계약과 다를바 없는 새로운 계약으로, 그리고 여호수아의 땅과 같은 새로운 행복의 땅으로 그려진다.
1). 예레미야서에서 미래에 대한 가장 잘 알려진 약속은 용서를 근간으로 한 새로운 계약에 대한 기대이다.(31:31-34) 이러한 기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나 잘 알려지고 유명해졌다. 이들은 “새 계약”이 하나님의 새로운 선물인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히8:8-12;10:16-17).그러나 본문에 대한 그러한 식의 이해는 상당히 부차적인 문제이다. 본문이 실제로 약속하고 있는 바는 야웨와 야웨의 백성 이스라엘 사이의 갱신된 신앙관계이며, 그것은 이제 훌룡한 신앙 안에서 순종을 요구하고 있다.
2). 이스라엘에게 있어 관계성이란 “땅의 상실”, 즉 포로의 상황이 이제는 약속의 땅에서 완전히 재정착되리라는 확신과 땅의, 약속과 더불어 ,-혹은 보다 더 낫게 표현하면, 땅의 약속 한 가운데에,- 파괴된 도시 예루살렘-느부갓넷살에 의해 부끄러움을 당하고 애가서 안에서 애도되었던 -이 새로운 광채로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도 주어진다.
3). 회복된 계약과 복구된 땅은 지속가능한 공동체적 삶의 갱신을 상징한다. 이는 다양한 이미지들과 공식들을 통해 표현되었다. 이에 계약적 친밀성이 온전히 회복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진다. (30:22; 참고 렘 11:4; 24:7; 31:33; 32:38; 겔 11:20; 14:11;36:28; 37:23,27)
“운명이 회복될것”이라는 말은, 안전하고 번창하며 생산적인 물질의 세계를 향한 모든 축복이, 지으시고 복 주시는 자 야웨와의 건강한 관계성으로 인한 결과라는 사실을 의미한다.(30:18; 31:23; 33:11,26)
II. 에스겔의 포로전승.
에스겔의 포로전승이 포로기간동안에 걸쳐 “흩뿌림”으로부터 출발하여 귀환과 회복의 또 다른 비전인 “모음”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표현은 에스겔에서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에스겔의 전승은 제사장적 성결을 근간으로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손상됨으로 인해 야기되는 하나님의 부재야 말로 커다란 위협이 된다. 제사장적 범주에서 하나님의 부재는, 하나님의 생명이 거두어짐으로 말미암아 삶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레미야와는 달리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향한 야웨의 사랑을 호소하지 않는다. 실제로 에스겔은 이스라엘을 향한 야웨의 사랑 혹은 심지어 야웨와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성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18장을 특별히 주목 해 보아야 한다. 이 장에서 예언자는 새로운 세대가 “돌이키면 살 수”있으며 과거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주목할만한 목가적(pastoral)어조가 나타난다. “죽은자 의 죽은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32절)그러나 포로생활을 넘어선 이스라엘의 새로운 가능성은 야웨의 자기평가, 즉 야웨의 자기 이름과 명성에 대한 스스로의 관심에 기반을 둔다. 이스라엘에게 도래할 새로움은 오로지 야웨께서 스스로의 명성을 고양시키는 행위로써만 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야웨를 “주목”하게 하는 일은 단지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긍정적인 무언가를 행하심으로써 이방 민족들에게 당신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일을 통해 가능하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열방에 대하여 야웨의 비할 수 없는 거룩하심을 세우는 도구였다. 야웨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행동하시지만, 그것은 동시에 이스라엘을 위한 일이 된다. 34-37,38-39장과 40-48장에 나타난 새로움-유다에게 야웨께서 보장하시는-에의 풍부한 기대는 바로 거룩함에 대한 야웨의 결심을 바탕으로 한것이다.
1). 이러한 가대들 중 가장 감미로운 것은, 바로 야웨께서 잃어버린 자, 쫓긴 자, 상한 자, 병든 자,를 위해서 “좋은 목자”가 되어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다.(34:11-16) 실패한 왕을 대신하여 야웨께서 이렇게 돌봐주겠다는 결심은 곧 야웨께서 포로민들을 진정한 목양적 관심으로 대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이다. 이러한 표현은 신약성서에서 “선한목자”란 개념을 통해 다시금 분명히 드러난다.(요10:11-18)
2).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른 뼈 계곡”환상은 잃어버림 당하고, 죽음을 당하고, 소망을 잃고, 가능성을 상실한 이스라엘의 화복을 예견한다(37:1-4).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을 부활에 대한 언급으로 아해했지만, 여기서 부활은 유다의 귀환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로 상태로부터 고향에서의 풍부한 삶으로의 귀환은 사실상 추방으로 인한 죽음과 절망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으로의 부활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