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역사속 장애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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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역사속 장애인 이야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사속 장애인 이야기 )
- 독후감-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역사 속 장애인 이야기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행정복지학부에 입학을 하면서 아직 일학년이지만 사회복지에 배우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졸업 후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할지 생각을 하면서 장애인, 노인, 아동, 청소년 등등 여러 분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나는 장애인 쪽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항상 생각했었고, 장애인 분야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다. 아직은 나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저 장애인 분야로 가게 되면 그저 몸이 힘들 거라는 생각 밖에 없었다. 평소 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없던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바로 역사 속 이야기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러한 장애인들이 과거에는 어떻게 살아 왔는지 궁금증이 내가 이 책을 고르게 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역사 속 장애인 이야기라는 주제 자체가 조금은 놀라웠다. 장애인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관련 분야 사람들은 당연히 연구해 봐야하는 과거의 장애인 이야기 이지만 나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주제라고나 할까. 아무튼 허를 찌르는 주제라 생각해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어느 누군들 한 가지씩 장애를 갖고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물음으로 서문을 연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전통시대 역사속의 장애인 이야기를 장애 유형별로 세분화하여 짧게 서술했다. 아울러 폭넓은 자료 수집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의 통합 연구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의 일화를 풍부한 자료를 인용하여 소개하고 있다. 내가 아는 이들 자료를 통해 세계최초의 장애인 단체인 명통시가 조선 전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이란 야담집에는 당시 정신지체로 분류된 간질환자에게 치료제로 인육을 먹였다는 다소 섬뜩한 일화도 실려 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장애인들은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결코 천시되지 않았고 장애유형별로 그에 맞는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정부에서도 조세 및 부역을 면제하고 부양자와 생필품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특히 신분제 사회이다 보니 양반 중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벼슬을 한 예도 많이 있었다 한다. 그랬던 것이 조선후기 신분사회가 무너지고 근대 자본주의 산업사회로 전환하면서 장애인은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책에서는 장애인이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음만을 지적했다.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장애인들이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았다. 국부 창출을 위해 생산력과 이윤 증대 극대화를 추구하며 노동자를 기계의 수족으로 취급하던 중노동과 장시간의 육체적 노동 현장에서 이른바 장애인들은 비생산적 존재로 여겨져 노동 현장 진입 자체를 근본적으로 차단당했다. 계속 계속 일을 해야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장애인들의 무가치한 존재로의 전락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수용시설에 장애인을 수용하게 되는 현대의 장애인의 문제는 장애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비장애인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말은 조선 세종 때 박연이 관현맹인의 처우개선을 주장하면서 강조한 말이라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겉으로 보기에 드러나지 않는 더 많은 장애를 속으로만 껴안고 생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자각하지 못하고 보지 못할 뿐이라 생각한다. 개인적 생각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 인 것 같다. 물론 환경적 영향도 있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 과도한 업무와 학업의 압박, 성공해야된다는 고정관념 등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한 우리의 몸부림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발생시키고 이러한 스트레스들이 몸에도 영향을 끼쳐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스트레스로부터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걸로 해소를 하곤 한다.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 맛있는거, 단거를 많이 찾다 보니 살이 찌고 또 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의 반복인 것 같다. 어쩌면 스트레스 해소할 방법을 제대로 찾아보지 않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점이다. 항상 바쁜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정신건강과 스트레스의 공격으로부터 너무 게으르게 대처한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더 노력하고 조금만 더 찾아보면 충분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있음에도 노력하지 않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 문헌 속에 장애, 장애인을 살펴봄으로서 전통사회에서 장애, 장애인을 알고자 하였다.
장애, 장애인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가진다. 과거에는 장애였던 것이 이제는 장애로 인식되지 않기도 하며, 사회구성원 다수가 장애로 인식하지 않음으로서 장애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도 있다. 구순구개열(언청이)이 그 예이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는 안경도 그 예이다. 과거 경증장애인의 경우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국가와 가족의 도움을 받았고. 그러던 것이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효율성이 중요한 사회 잣대, 사실 사회 잣대라기보다 자본의 잣대가 되면서 장애와 장애인은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과거 국가에서는 장애인에 대하여 각종 세를 면제해주기도 했으며, 구휼의 대상으로 삼아 노약자와 함께 사회가 보살펴야할 존재로 보았다. 가끔은 잔치를 열어주기도 했다, 심청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통사회가 장애, 장애인을 대하는 것이 오늘날 보다 나은 것이다. 공동체가 짊어지고 나누어야 할 몫이던 것이 공동체사회가 깨어지면서 장애는 개인의 짐으로 지워졌다. 그리고 현대, 80년대에 이르러서는 각종 시설이 난립하였고 장애, 장애인을 격리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 장애, 장애인은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조금 놀라운 사실은 장애인이란 단어를 쓰게 된지 30년이 못 된다는 것이다. 80년대 초반 보건복지법이 만들어지면서 사용되었다는데 그전까진 공공연하게 불구자란 말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과거보다 못한 오늘의 장애, 장애인에 대한 정책 그리고 인식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현재 한국의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았다. 그 중 그들의 억울함이 보이는 기사를 보았다. 나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애인을 비롯한 기초생활수급대상자들은 통장을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개설 자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개설하여 그 안에 수급금액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있으면 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다는 것인데 이 이야길 듣고 이럴 수가 라고 생각했다. 장애, 장애인도 이 사회의 일부다. 그들에 대한 지원 폭은 당연히 넓어져야 하지만 그 폭이 살만큼만 받아라.식이 아니라 자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저축도하고, 계획도 세우고 그래야는 것인데 현행법이 장애인 자활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셈이다. 어떠한 장애인은 말했다. 나도 일한만큼 제대로 세금을 내고 싶다. 그런데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한마디로 장애인은 생산력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무조건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설 수 있게 생산력은 떨어지지만 내 몫만큼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장애인들 중 경제활동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11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실시한 장애인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세 이상 등록 장애인은 237만 6500여명이다. 그 중 취업 장애인은 85만5000여명, 비경제활동인구는 152만1000여명이다. 비경제활동률이 64%에 달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복지에 대해 ‘단순히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경제활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한다’며 생산적 복지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장애인들이 고용에 적극적이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고용안정성은 보장되지 않으면서 근로소득은 적고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남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의 고용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기초생활수급권을 박탈하지말고, 어느 정도 지원을 유지해주면서 고용에 자리잡을 수 있을때까지 기다려 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기초생활수급권은 최저생계비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 자녀교육비, 전기세 등의 여러 다양한 서비스가 있기 때문에 장애인 뿐만 아니더라도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 일을 할수 있음에도 기초생활수급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노동을 안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대 이후 장애인은 경쟁력 없는 인간으로 치부되어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인 천대를 겪으며 수용시설에 격리되고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게 되었다. 저자의 지적처럼, 이 시점에서 전통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국가 정책은 지금의 장애인 문제에 많은 시사를 준다. 가족과 마을 공동체, 그리고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같은 울타리 안에서 일반인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던 과거에 비해, 보호와 복지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사회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통시대 장애인 정책은 오늘날에 비해 훨씬 ‘선진적’인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