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와다 하루키) - 김일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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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와다 하루키) - 김일성주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북조선: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와다 하루키)
와다 하루키의 는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활동 신화가 북한 체제의 근간이 됐으며 ‘유격대’의 특성이 북한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지배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유격대 신화’의 기원이 된 김일성이라는 인물의 탄생부터 거슬러 역사적으로 북한 체제의 성립 과정을 분석한다.
1. 내용 요약
김일성의 만주항일전쟁은 북한의 국가사상, 이데올로기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역사는 순화·미화되어 신화가 됐고 북조선 사람들의 삶의 기준이 됐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金成柱)로 교회장로의 딸인 강반석과 소작농의 아들인 김형식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일성은 1927년 지린 유원중학교에 입학했다. 유원중학교 재학 당시 조선공산청년회에 참가했다는 영사관 경찰자료에는 ‘김성주(金聖柱)’로 나온다.
1931년 9월 일본의 만주 침략 이후 그는 1932년 봄 안투에서 조선인무장대를 조직했다. 최초의 김일성 부대로, 북조선은 발족일을 4월 25일로 해 조선인민군 창설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1933년 5월부터 시작된 반민생단투쟁에서 김일성도 자유롭지 못했다. 같은해 말 김일성도 혐의를 받아 정치위원에서 해임됐지만 당시 중국측 기록에 따르면 개성을 가진 역량 있는 간부로서 주목받고 있음이 확인된다.
북조선 신화의 핵심은 조선인민혁명군이 기일성에 의해 조직되고 이것이 김일성 유격대였다는 것이다. 1937년 6월 4일 보천보공격은 김일성을 전국에 알리고 ‘김일성 비적’이 조선의 영웅이 되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부터 유격대에 대한 진압작전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김일성은 ‘고난의 행군’ 작전을 개시했다. 1939년 3월까지 100여일에 걸쳐 조중국경까지 일본군의 추적을 따돌리며 눈 속을 행군해 간 것이다. 당시 소년대원들(리을설, 라두익, 전문섭 등)과 김일성 사이에는 매우 굳건한 관계가 맺어졌다고 한다. 관동군의 토벌작전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지만 김일성 부대는 1940년 3월 일본 토벌부대인 마에대 중대를 전멸시키기도 했다.
고난의 행군은 소련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귀결됐다. 김일성 부대는 소련에 구속되어 최조를 받고 비판을 받았으나 1941년 4월 일·소 중립조약이 체결되면서 만주의 유격대활동은 소련에 의해 억제되었다. 1942년 2월 김일성의 처 김정숙은 보로시로프에서 가까운 남야영에서 장남 김정일을 낳는다.
1942년 8월 소련 측이 저우빠오중에게 제안해 동북항일연군 부대가 88특별저격여단에 편성됐고 김일성은 부서기로 선출됐다. 최용건, 김책, 김일성 세사람이 88특별여의 조선인 지도자 중 정점을 이뤘다.특히 김일성은 동남만에서 활동하며 조선으로 공격해들어오면서 이름이 알려져있었고 유능하고 적극적이었다.
1945년 7월 대일전쟁이 가깝다는 소련측의 언급 이후 부대는 김일성 최용건 김책 등으로 구성된 조선공작단을 꾸렸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북조선에서 공작한다는 것이 이때 결정된 셈이다. 일본 항복 뒤인 8월 25일 조선 공작 명부가 발표되고 28일에는 88특별여단 관계자에게 적기훈장이 수여된다. 김일성은 9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만났다고 당시 소련공산당 국제부 일본과장 코발렌코가 전한바 있다. 자신들이 점령할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 공산주의자의 중심으로 김일성을 낙점한 셈이다. 김일성 부대는 9월 5일 하바로프스크를 기차로 출발해 무딴쟝까지 갔다가 신의주로 가는 선이 불통임을 알고 되돌아왔다 이들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나와 소련군함을 타고 9월 19일 원산으로 상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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