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 연구의 최전선 교육사에서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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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사 연구의 최전선 교육사에서 젠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본 교육사연구에서 젠더(gender)의 관점이 도입된 것은 1990년 전후의 시기이다. 서구의 학문 연구 동향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1960년대 말 미국에서 생겨난 제2의 페미니즘 운동 20세기 여성해방운동은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하게 되는 1920년을 정점으로 하여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년)까지의 제1차 여성해방운동과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제2차 여성해방운동으로 이루어진다. 제1차 여성해방운동의 화두가 평등이라면 제2차 여성해방운동의 화두는 「다름」이었다. 제1차 여성해방운동은 성별간의 법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 그리고 복지문제에 중점을 두었다. 제1차 여성해방운동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이론가인 버지니아 울프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경제적으로 독립할 것을 강조하는 유물론적 시각에서 운동을 뒷받침했다.
“전투적인 페미니즘” 혹은 “여성해방운동”으로 명명되는 제2차 여성해방운동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치와 경제의 틀을 넘어서 성과 몸, 감정, 가족과 같이 지금까지 사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영역들로 들어갔다. 제2차 여성해방운동은 1970년대 말 남녀간의 ‘다름’뿐만 아니라 여성들 간의 다름에 대해 더욱 연구하게 된다. 백인 중산층 여성에 의해 주도되었던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비판과 함께 여성들 간의 차이가 강화되면서 인종·계층·성적 정체성에 있어서 여성 간의 다름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 관심영역도 경제와 정치뿐만 아니라 평화·인권·기술과학·문화·역사·성의 영역으로 확대되었다.(크리스 위던(1987), 「후기 구조주의의 원칙들」, 『여성 해방의 실천과 후기 구조주의 이론』,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7-32쪽 발췌)
은 남성 중심의 사회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학문과 문화의 체계도 급진적 비판을 전개하여 “여성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연구의 방법을 제시했다. 젠더는 그 과정에서 발견된 개념이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남녀의 “타고난 성질의 차이”로 정당화해 온 것에 대해, 페미니스트 연구자는 생물학적 성차(sex)와 사회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성차를 구별하고 후자에 젠더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젠더 개념의 도입에 따라 성차의 가변성이 분명해졌고, 동시에 성차별을 만들어내는 요인에 대한 분석의 길도 열리게 되었다.
교육사에 준 영향은 우선 서구에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여자교육사 연구의 활성화로 나타났다. 이들 연구는 사회사나 가족사 등 ‘새로운 역사학’의 성과와 맞물려, 전통적 교육사 연구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완하는 동시에 전통적 교육사 연구 방법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국제적 연구 흐름은 일본에도 영향을 주어 젠더 관점을 가진 교육사 서술 방식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과거의 교육현상에 내포된 성차에 주목한 연구는 예전부터 일본 교육사학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명한 사상가나 학교제도를 고찰 대상으로 했던 전통적 교육사 연구에서 일반 여성들을 조명하는 연구는 교육사의 주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특수한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교육학연구 전반을 살펴보면 국제연합(國連, UN)의 여성차별 철폐조약 채택, 일본의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제정 등의 사회적 동향을 배경으로 1982년 『교육학 연구』는 남녀평등교육을 특집으로 선정했다. 8편의 게재논문 가운데 5편이 메이지 시기 이후의 일본 여자교육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로, 여자교육사 연구의 증가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1994년에 열린 교육사학회 심포지엄 《교육사에서 여성》은 ‘교육사 가운데 젠더’를 본격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린 획기적 시도였다. 부제 〈젠더의 관점에서 교육사를 되묻는다〉가 보여주듯이 이 심포지엄의 핵심은 종래의 교육사가 ‘젠더를 은폐한 교육사 = 남성교육사’이건, 혹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여성만을 다루는 여성교육사’이건 간에, 모두 근본적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총체로서의 교육사’ 가능성을 검토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젠더와 국가, 학교, 가족 등 다른 영역과의 관계를 고려한 4개의 보고와 그 다음에 이루어진 전체 토론의 논의는 아귀가 꼭 맞았다고 볼 수는 없었고, 교육사학회 전체에서 문제의 핵심이 공유되지도 못했다.
서구에서는 젠더 개념을 재고찰하여 여성사와 젠더사와의 관계를 묻고자 하는 움직임이 1980년대 들어와 나타났다. 그 배경에는 여성학과 여성사가 본래 의도와 달리, ‘여성을 대상으로 한정하는 학문’에 그쳐 ‘남성중심 학문적 틀을 교체’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음에 대한 자기비판이 있었다.
젠더 개념을 재고한다는 점에서, 여성사 연구뿐 아니라 역사연구 일반에 큰 전환을 가져온 것은 죤 스콧(Joan W. Scott)의 『젠더와 역사학』이었다. 그녀는 성(性)도 젠더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것”이라 단정하고, 젠더를 “육체적 성차에 의미를 부여하는 지(知)”라고 재정의 하였다. 젠더는 “역사분석의 유효한 범주”로서, 여성에 관한 것만 아니라 남성이 관여해 온 모든 사상, 특히 그것을 해석하고 체계를 세우는 지의 구성마저도 고찰대상으로 했다.
스콧가 했던 젠더의 정의는 여성사가 지닌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젠더와 성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젠더가 “여성”으로 실체화하는 것을 저지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에서 출발한 서구 여성학과 여성사는 젠더 개념의 음미와 방법적 검토를 통해서 정치권력과 남성 섹슈얼리티의 관계를 논의하는 데까지 시야를 넓히고 있다.
이러한 젠더 연구의 진전에 대해 서구 교육사 연구의 반응은 민감했다. 교육사가 사회사의 일환으로 위치한 서구에서는 여러 교육현상을 고찰할 때 젠더는 국가나 계급, 인종·민족과 마찬가지로 필요불가결한 분석개념으로 지위를 획득하였고, 또한 젠더나 섹슈얼리티를 직접 주제로 다루는 교육사 연구도 풍부하다.
제1절 서양교육사 연구와 젠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