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개론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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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588년 4월 5일 맘즈베리에서 출생하였다. 무명의 목사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스콜라철학을 전공하였다. 스튜어트왕조를 지지하는 정치가로 지목되자, 청교도혁명 직전에 프랑스로 망명하여 유물론자 R.가생디와 철학자인 R.데카르트 등과 알게 되었다. 그 후 크롬웰의 정권하에서는 런던으로 돌아와 정쟁(政爭)에 개입하지 않고, 오직 학문연구에 힘썼다. 왕정복고(王政復古) 후에도 찰스 2세 통치하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F.베이컨과는 달리 귀납법(歸納法)만이 아닌 연역법(演繹法)도 중시하여, 양자의 상즉적(相卽的) 관계에 의하여 이성(理性)의 올바른 추리인 철학이 성립된다고 생각하였다.
주요 저서인 《철학원리》는 제1부 〈물체론〉(1655), 제2부 〈인간론〉(1658), 제3부 〈시민론(市民論)〉(1642, 1647) 등 3부로 나누어졌는데 베이컨 학설보다 더 체계적으로 구축되었다. 제1부 〈물체론〉에서 그는 자연학(自然學)을 철학의 기초에 두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인(形相因)·목적인(目的因)을 버리고 전실재(全實在)를 물체와 그 운동이라는 동력인(動力因)만으로 설명하려는 유물론, 즉 자연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자연적 물체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을 인위적 물체인 ‘인간’이나 ‘국가’에도 미치게 하여, 감각·감성(感性) 등의 인식의 이론이나 정념론(情念論), 윤리학, 법·사회의 이론에도 적용하였다.
정신은 미세한 물체이고, 인식은 외계의 운동이 감관(感官)에 주는 인상에서 생기며 실재의 모사(模寫)가 아니고 주관적이라 하였다. 이는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으며, 지적인 판단이나 추리는 그 표현수단으로서 언어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후자도 실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개개의 물체만이 실재하는 것이며, 추상적·보편적 개념은 기호(記號)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는 중세(中世)의 W.오컴 등에서 현저했고, 또 후일의 영국 경험론에서 보는 고유한 유명론(唯名論)의 전형적인 예이다. 수학(數學)은 앞에서 말한 기호로서의 보편자(普遍者)에 관계되는 지식의 모범이라 하였다.
감정이나 정서에 대해서도 똑같은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외적 자극에 대한 이론적 반응이 감각인 데 반하여, 실천적 반응은 쾌(快)·불쾌(不快)의 감정이다. 선(善)이란 쾌이므로 인간이 바라는 것이고, 악(惡)이란 불쾌이므로 인간이 싫어하는 것이다. 의지(意志)는 외적으로 결정되며 결정론(決定論)은 필연이다. 본질적으로 선한 것은 없고, 선악(善惡)·정사(正邪)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국가와 법이 성립되었을 때에 그 판정의 기준이 생긴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어서 ‘자연상태’에서는 아무것도 금할 수 없고, 개인의 힘이 권리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끝까지 추구하는 자연상태에서는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있고, ‘사람은 사람에 대하여 이리[狼]’이기 때문에 자기 보존(自己保存)의 보증마저 없다. 그러므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은 계약으로써 국가를 만들어 ‘자연권(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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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權)’을 제한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의지에 그것을 양도하여 복종한다. 홉스는 《리바이어던 Leviathan》(1651)에서 전제군주제(專制君主制)를 이상적인 국가형태라고 생각하였다. 그 밖의 저서로 《자연법과 국가의 원리》(1640) 등이 있다
로크 [ Locke, John , 1632.8.29~1704.10.28 ]
브리스틀 근교의 링턴 출생. 계몽철학 및 경험론철학의 원조로 일컬어진다. 아버지는 소지주 ·법률가로서 내란 때는 의회군에 참가하여 왕당군과 싸웠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배웠고, 한때 공사(公使)의 비서관이 되어 독일 체류 중에 애슐리경(뒤의 샤프츠베리 백작)을 알게 되어 그의 시의(侍醫) 및 아들의 교사 그리고 고문이 되었다. 백작이 실각되자 반역죄로 몰려, 1683년 네덜란드로 망명했다가, 1689년 사면되어 귀국하였다. 망명생활 동안 각지를 전전하면서 여러 학자들과 친교를 맺고, 귀국 후 《종교 관용에 관한 서한》(1689) 《제2서한》(1690) 《제3서한》(1692) 《통치이론》(1690)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1690) 등을 간행하여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 후 관직에 있었으나 1700년 이후 은퇴하여 에식스의 오츠에서 사망하였다.
데카르트 철학과 I.뉴턴에 의해 완성된 당시의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졌고 반(反)스콜라적이었다. 《인간오성론》은 그의 영향을 바탕으로 G.버클리, D.흄에게로 계승되었던 경험론과 내재적 현상론(內在的現象論)의 입장에서, I.칸트에 이르러 결실을 보게 되는 인식을 근본 과제로 제기하여 논술한 저서이다.
제1권에서는, 먼저 R.데카르트나 케임브리지 플라톤파(派)의 본유관념(本有觀念)과 원리를 부정하고, 그 위에 제2권에서는, 인지(人智)는 모두 감각과 반성이라는 경험을 통하여 얻어지는 단순관념에 유래하며, 그로부터의 복합관념으로 설명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실체(實體)’ 개념도 단순관념의 복합이며, 기체(基體)는 그 배후에 상정되는 불가지(不可知)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단, 색(色) ·향(香) ·음(音)과 같이 감각에 대하여 상대적인 제2성질과, 연장(延長) ·운동 ·고체성(固體性)과 같이 물(物) 자체에 구비된 제1성질과 구별하여, 전자(前者)는 후자가 감각기관에 자극을 줌으로써 생긴다고 생각하여, 당시의 과학적 실재론을 전제로 삼았다. 또, 불가지인 물적 실체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정신에 대해서도 반성의 관념과 기능적 인격에 의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정신실체나 신의 존재를 인정한 점에서, 그 문제를 다음의 버클리와 흄에게 남겨 놓았다.
제3권의 언어론은, 스콜라적 실체형상(實體形相)의 비판, 개념론 또는 유명론적(唯名論的)인 보편개념의 설명 ·정의에 대해서의 견해 등 현대 의미론(意味論)에 통하는 중요한 고찰을 포함시켰다. 제4권은 제3권까지 논술한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지식의 확실성 ·가능성 ·종류 등을 논했다. 제4권에서 자아의 직각지(直覺知)를 지식의 근원으로 하는 것 등 이성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으나, 지식을 관념과 대상 간이 아니라 관념간의 일치 또는 불일치의 지각(知覺)이라는, 관념간의 관계라고 한 것은 후의 경험론의 방향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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