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사회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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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현대사회 이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8월25일 토요일 10시 50분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기내에서 3장의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그 종이는 중국에 도착 했을 때 공안들에게 제시해야하는 것 들이였다. 온통 영어와 한자 내가 공부를 너무 안했나? 알아보는 글자가 정말 몇 개 없었다. 눈치코치로 대충 기록을 하고 비행기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기대나 설레 임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냥 아무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중국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중국에 도착하면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를 생각했다. 닥치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진정시켰다.
2시간이 흘러 연길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은 우리보다 한 시간 느리기 때문에 나는 도착하자마 손목시계의 시간을 고쳤다. 연길공항의 모습은 한국의 인천공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어느 시골 시외 버스터미널에 내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특유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공안들의 여러 검사를 거치며 연길공항을 빠져나왔다. 그곳에서 아주친절하게 한글로 다써있고 또한 한국인들을 검사하는 공안초차 나에게 "안녕하세요?" 라고 아주 유창하게 한국어로 물어보았다. 순간 나는 그에게 한국인이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연길공항을 빠져 나왔다.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무거운 짐을 들고 어떻게 학교 까지 가느냐가 문제였다. 일단 택시를 타기위해 택시가 서있는 곳으로 갔다. 대충 택시비가 비싸면 30원 이란 말을 들었기에 그것만 믿고 무작정 기사한테 가 "我要去延大" 기사가 알아들었다. 그 다음 부터가 문제였다. 절대 30원에는 갈수 없다는 것. 나는 多少 그 말만 할 수 있었고, 그다음부터 기사의 말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여기는 중국
한국에서도 공항근처의 택시는 바가지를 많이 씌우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나도 예상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금액 30위엔과 달리 기사들은 모두 80원을 요구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여권이랑 짐을 잃어버리느니 돈을 버리자 생각하여 그중에서도 인상이 좋은 기사를 골라 택시를 탔다. 이게 웬 일 인가? 타자마자 주차료를 내라고 한다. 100위엔 짜리 밖에 없어서 100원짜리 줬더니 거스름돈을 주지도 않고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보더니 중국어로 걱정 말라고 한다. 일단 탔으니 어쩔 수 없었다. 공항에서 학교까지는 굉장히 가까운 거리였다. 많이 불러도 10원이라는데 완전 심한 바가지를 쓴 것이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20원을 거슬러 주었다. 그러더니 다시 팁을 달라는 것이다. 내가 안 된다고 했지만, 막 무간 에 달라는 어쩔 수 없이 결국 나는 거금 100원을 내고 연변대학에 도착했다. 모두들 100위엔에왔다 는 말을 듣고 모두 놀랐고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삯이며 처음이니깐 이해하기로 했다.
유학생 기숙사에는 경비 아저씨 같은 분 이 계시는데 모두 그를 아바이 라 부른다. 아바이는 내 짐을 들어주고 방을 안내해 주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 왔을 땐 순간 " oh my God "정말 뭐라고 표현 할 말이 없었다.
방에서 풍겨져 나오는 쾌쾌한 냄새, 커튼도 없는 커다란 창문 수도꼭지에서는 붉게 흘러나오는 녹물과 녹ㄱ루들 이런 광경을 보고 나는 나도 모르게 "어쩜 좋지?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또한 이런 걸 티내면 내가 너무 유별스럽게 행동하는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중국에 대해 많은 기대 하진 않았지만 이정도 일지는 몰랐다. 처음부터 한국과 다르다는 생각에 실망하면 내가 이곳의 생활이 힘들어 질것 같다는 생각에 이곳은 중국 이다 라는 생각으로 나의 마음을 달랬다.
가장먼저 중국을 보고 싶었다. 물론 작은 소수민족의 지역이긴 하지만, 이곳도 중국이라서 나는 무지 궁금했다. 그래서 짐도 풀지도 않은 채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한국의 천 냥 백화점 같은 곳을 발견했다. 그 가게에서는 량콰이, 량콰이 라는 소리가 계속 들렸고 그냥 막연히 싸겠지 라는 생각에 옷걸이, 걸레, 바구니 등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미리 와있었던 학생들을 통하여 시장이 어디 있는지 방은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 이런 저런 정보를 들었다.
첫째 날은 너무 피곤해 냄새나는 이불위에서 덮지도 못한 채 그냥 웅크려 잠을 잤다. 다음날 나는 마트며 시장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마트나 시장에서는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내가 난감해 하면 어디선가 조선족이 나타나 통역을 해주었다. 역시 연변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떠듬떠듬 중국말을 하려고 하면 "한국말 하세요."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나에게 말했다. 또한 연길이 소비도시라서 그런지 친절한 중국인은 찾을 수 없었다. 버스도 빨리 안타면 바로 달려버리고 택시도 타기 전에 얼마인지를 물어봐야지 안 그러면 바가지를 씌운다. 여긴 일반적으로 5원이다. 방을 꾸미는데 조금 많은 돈이 들어갔다. 여행을 갈려고 갖고 왔던 돈 이였는데 일주일 만에 40만원정도 를 다써버렸다. 택시비, 먹는 것, 생필품, 온수기, 장판, 기타 등등 온통 돈 들어갈 곳 들이였다. 너무 짜증났다, 일주일 만에 다써버리니 좀 허무했다. 중국이 물가가 싸다는데... 싸긴 하지만 다 사야했다. 이렇게 일주일 보내면서, 내가 중국어를 말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온통 한국아이들과 있어서 한국말만 하게 됐다.
■학교생활
9월3일은 개강을 했다. 나는 중급반에 들어갔다. 처음엔 정말 한마디도 알아 들 을 수 없어서 너무 괴로웠다. 2주 3주가 다 되가는데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다니.. 너무 괴로워 참을 수 없었다. 매일 TV도 틀어 논다. 들리지 않아도 무조건 잘 때 도 켜놓고 잔다. 여긴 연변이라 한국방송이 나왔다. 주말이면 한국학생들은 무한도전을 보겠다고 하고 항상 한국 방송을 보는데 나는 절대 보지 않았다. 왠지 한국방송을 보면 빠져버려서 계속 보고 싶을 것 같았다. 3주정도가 지난 지금 처음보다는 조금 낳아졌지만, 잘 듣지 못하는 건 여전 한 것 같다. 한 달이 지난 내 심정은 너무 답답하고 내가 발전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 마져 든다.
내가 느끼는 연변의 생활은 한국보다 조금 피곤하다. 아침 8시에 시작되는 수업은 충분히 잠을 자는데도 왜 이렇게 피곤하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안 들리는 말 들을 여다 보니 피곤함이 밀려오는 것 같다. 한국에선 절대 낮잠 이란 게 없었는데 여기선 낮잠도 잔다.
수업시간중의 내 모습은 발음이 너무 좋지 않고, 선생님의 말을 알아 들 을 수 없다는 것이 였다. 나는 중국인 친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가서 친구를 구하는 메모를 적어 붙여놓았다. 붙이자마자 전화가 왔고 나에게 互相助하는 친구가 생겼다. 그에게 중국어를 배웠다. 하지만 그는 후베이성 친구라서 권설음이 전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l, n 발음을 못했다. 오히려 내가 권설음 발음 shi하면 그 친구는 틀리다고 계속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luo(루어오) 를 nuo(누워) 이렇게 발음하면서 나를 계속 지적해주었다. 처음 구한 후상은 발음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 중국어 사전을 선물로 줄 정도로 마음이 순수했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두 번째 나의 互相助 가 생겼다. 그들 역시 남학생들이다. 한명은 후베이성 한명은 길림성 사람이다. 둘이서 나에게 아주 친절하게 발음이며 모든 것을 가르쳐 주려고 애쓰고, 항상 만나면 여러 가지로 신경써준다. 나의 학교생활은 이렇게 단조롭게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