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과 전영택의 잡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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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동인과 전영택의 잡지 소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김동인의 작가적 기질이 이광수의 기치(旗幟)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식의 문학으로서 자신의 독자성을 확보하려는 의지가 강렬했던 만큼 20세의 젊은 나이로 순수문예지 1919년 2월~1921년 5월에 걸쳐 9호로 종간된 이 동인지는 실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1924~1925)5호에까지 뻗어나갔다. 이에 맞설 수 있었던 문단 및 문학적 세력은 서울 중심 문인들의 모임인 (1921.6), 3대 민간신문(동아일보, 조선일보, 시대일보)그리고 매일신보뿐이었다. 이 동인지의 핵심인물은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김환, 최승만 5인이었고, 제2호부터 임시정부 정무원급의 거물인 이광수와 독립신문사에 근무한 수재 주요한이 상해 망명지에서 글을 보내왔다. 는 ‘예술성’이라는 개념을 내세워서 지금까지의 이인직, 이광수에 있어 이념성과 흥미성의 두 기둥과는 다른, 그러니까 제3의 범주가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예술로서의 소설이란 새로운 범주가 자리 잡게 되었고, 김동인으로 하여금 예술성이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오게끔 한 것은 근대소설의 필연성이다.『한국소설사』, 문학동네, 김윤식외, 2002, p88~89.
를 발간했다. 김동인 문학의 출발은 계몽주의, 설교와 훈도로 일관한 이광수의 문학적 사상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신문화, 신문명의 교화주의는 문학의 본질을 망각한 처사로 판단했다. 『한국근대소설논고』, 형설출판사, 이강언, 1883, p50.
1918년 조선 유학생 회관의 망년회에 참석한 김동인은 독립선언서 기초를 요청받고는, “정치운동은 그 방면의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문학으로”라는 쪽에 섰다고 술회하고 있다. 김동인ㆍ주요한에게 정치운동이라는 이름의 이념성이란 한 단계 뒤진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보다 긴요한 삶의 실천 과제는 민족의 독립이기보다는 근대성의 획득에 있었다. 위의 책, 김윤식외, p90~91.
개인의 주체성으로 모든 것을 밀고나가고자 한 이광수 세대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세계에 그들은 속했다.
김동인은 문학과 예술이라는 것이 모두 인간의 위대한 창조적 정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철저한 자아 중심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예술이란 참인생과는 달리 작가에 의해 창조된 인생이며, 작가는 자기가 창조한 삶의 세계-예술을 완전히 지배해야 하고, 바로 여기서 그 작가의 위대성 여부가 결정된다고 했다. 이처럼 김동인이 제시하고 있는 예술의 개념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삶의 새로운 창조이다. 김동인의 이와 같은 태도는 소설 창작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는 소설의 근본 과제를 참다운 인생의 창조라고 말한다. 인생문제를 삶의 현실에서 찾지 않고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찾고자 하였으며, 소설을 통해 그 자체로서 완결된 의미를 구현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헤매며 고민하는 미숙한 짓을 하지 말고, 작가 자신이 완전히 지배할 수 있고 자유자재로 작중인물을 인형인 듯 조종할 수 있는 인생을 만들어내는 것(인형조종술) 『한국현대문학사1』, 민음사, 권영민, 2002, p209~210.
이 그의 소설의 목표이다. 즉, 참인생을 그리는 자를 참예술가라 한다면, 동인 자신은 참된 창조자이므로 곧 ‘신’에 해당하는 존재라고 했다.
김동인의 사상형성 근거 - 욕망의 내적 중개자
김동인에 있어 맏형인 김동원은 언제나 그가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이었다. 신민회의 중추인물이었으며, 평양을 대표하는 장로였고, 해방 후에는 국회부의장까지 지낸다. 모든 면에서 동인의 적수가 될 수 없는 인물이다.
1934년 김동인이 생활비가 떨어져 가족이 위협을 받게 되었을 때 부호인 맏형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했다. 이러한 동원의 냉혹성은 파산 후의 동인의 홀로서기에 도움이 된다. 이 사실은 그의 생애의 중요한 방향판이 된다. 동인의 일생은 형과의 맞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이 장로이면 그는 무신론자가 되고, 형의 도덕주의에는 유미주의로 맞섰으며, 형이 애국지사이면 그는 민족보다는 자아를 사랑하는 개인주의자가 된다.
그의 일생은 물구나무선 김동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동인의 모든 소설행위는 맏형인 동원을 향한 대응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신이 됨으로써 맏형에 맞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소설로 신이 되고자 한 김동인은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고, 장사꾼으로서의 현실적인 삶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있었던 형이라는 막강한 신 앞에서 소설로 신이 되고자 했던 동인은 실패하였다. 그 때문에 그는 되돌릴 수 없는 육체의 망가짐에 부딪치고 결국은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형과 아버지가 지니고 있던 지적이며, 진보적인 분위기는 동인을 근대적인 작가로 키운 자양분이기도 하다. 『김동인- 작가의 생애와 문학』, 강인숙, 건국대학교출판부, 1994.
그렇다면, 김동인의 문학이 이광수 문학의 연장인가 단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