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담정 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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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담정 김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노론계 문인,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潭庭이다. 김려는 1766년 노론 시파 계열 인물인 김재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문장에 뛰어났으며, 특히 공령문攻令文을 잘 하던 인물이었다.
김려는 15세 이른 나이에 성균관에 들어가 27세 때 진사시에 급제하였는데, 이 시절에 그는 문학의 재주를 발휘하며 평생의 지기인 이옥, 김조순 등을 만나 교유하였다. 그런데 1797년 전도유망한 문인이었던 그의 나이 32세에 벗 강이천의 옥사에 연루되어 형조에 갇히는 뜻밖의 일을 당하게 된다. 함께 모여 서학西學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서해에 진인眞人이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것이었다.
부령으로 떠나는 유배 길부터 유배생활 내내 그는 매일같이 일기를 썼는데, 그것이 바로 이다. 에는 김려가 유배 도중에 겪은 온갖 고초와 혹독한 세상인심이 적나라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곤경에 처한 뒤에 새롭게 만나게 된 사람들과 따뜻한 인심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경험한 정겨운 이야기를 풀어놓음으로써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김려는 첫 유배지인 함경도 부령에서 4년을 살았다. 그곳에서 김려는 한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다정다감한 연인으로, 누이로, 지기로, 항상 그의 곁을 지켜 주었다. 이름은 연희이고, 신분은 기생이었다. 1801년 김려는 또 다시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유배지를 진해로 옮기게 된다. 그곳에서 부령과 추억으로 남은 연희와의 사랑을 그리는 연가 를 쓰게 된다. 에서는 부령의 그리운 사람들로 넘친다. 유배생활의 고통을 극복해 나갈 수 있게 한 부령 주민들, 그들의 삶과 현실, 소박한 인간미, 호탕한 술친구들을 비롯해 신분과 남녀노소의 구분을 넘어 그가 사귄 부령 사람들, 그들의 생생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이 바로 이다. 아쉽게도 부령 시절 김려가 쓴 글들은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 될 때 필화를 입어 모두 사라져버렸다. 등, 전하는 제목을 통해 김려가 첫 유배지 부령에서 어떤 종류의 글들을 썼는지 짐작해 볼 뿐이다.
진해는 김려의 두 번째 유배지이다. 그는 진해의 어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한편, 또 스스로 각종 어패류의 형색과 성미를 관찰하여 하나하나 기록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한 지 일 년여, 마침내 김려는 한국 최초의 어보魚譜인 를 완성하게 된다. 에는 어류 53항목, 갑각류 8항목, 패류 11항목 등 모두 72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각 항목에는 어류의 명칭, 분포, 종류뿐만 아니라 잡는 방법, 조리방법, 유통과정 등까지 기록되어 있어, 어보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이와 더불어 의 또 다른 가치는 각 항목 아래 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지은 기속시紀俗詩들에 있다. 해당 어패류와 관련된 진해의 풍속이나 풍물을 간결하면서도 재치 있게 묘파한 이 시들은 를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1806년 10년의 유배생활이 끝났다. 그의 아들 김유악이 아버지의 무죄를 주장하며 사건의 재심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 상소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1812년 벗 김조순의 도움으로 처음 관직에 나간 그는 1817년에서 1819년까지 연산현감을 지냈으며, 1821년 9월 함양군수로 재직하던 중 56세로 세상을 떠난다.
해배된 뒤 김려가 힘쓴 일 중 하나는 자신의 시문은 물론이거니와 벗과 선배들이 남긴 시문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다. 김려는 연산현감으로 재임하던 1818년 봄부터 함양군수로 임소에서 죽기 3개월 전인 1821년 6월까지 평소에 여러 경로를 통해 구해서 상자 속에 보관해 두었던 여러 문인들의 초고를 집중적으로 정리하여 총서의 편집에 몰두하였다. 에는 자신뿐 아니라 벗들이 남긴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벗 이옥의 여러 원고를 정리한 뒤, 벗을 대신해 그의 시문을 옹호하고 변론하면서, 그 자신의 문학론을 함께 펼치기도 하였다. 거기에서 당대 문단의 편견과 구습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새로운 감수성과 현실인식을 추구하는 그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김려는 지속적으로 야담과 야사에 관심을 갖고 야담과 야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나갔다. 그가 평생의 열정을 모두 쏟아 조선의 야담과 야사를 정리한 결실이 바로 다. 이 책은 조선초기부터 후기까지 60종의 야담과 야사를 140권 70책으로 정리해낸 것이다. 여기서 김려는 당대의 인물들이 아닌, 역사 속의 인물들을 주로 형상화하였는데, 앞서 씌어진 글들을 참조하면서도 자신의 시각에서 각 인물들의 삶을 재해석하였다. 역사 뒤로 사라진 인물들의 삶을 복원해내고 그들의 삶이 현재의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들을 환기시켰다. 또 자신의 재능을 감춘 채 숨어살 수밖에 없게 만든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었다.
김려는 그가 머무는 곳이 어디가 되든,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달라지든 간에,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그들의 이야기에 끝없이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가 본대로 들은 대로, 그가 만난 대로, 아는 대로 자신의 글로 옮겨 담았다. 그는 진정 시대의 이야기꾼, 시대의 글쟁이였던 것이다.
2) 김려의 벗, 이옥
이옥(1760~1810)은 생애를 자세하게 밝힐 길이 없으며, 문집도 온전하게 전하지는 않는다. 전주이씨이지만 이미 한미해진 가문에서 태어났고, 과거에 응시했다가 소설 문체를 사용한다 해서 말썽만 일으키고 말았다. 정조의 문체반정(1792)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는데 두 차례 귀양살이를 해야만 되었다. 가까운 벗인 김려에게만 인정받았을 따름이었다. 김려가 정리해놓은 글에 전 23편이 있고, 별도로 전하는 이라는 것이 있어, 정통 한문학에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문학에 힘쓴 자휘를 가까스로 전한다.
참고문헌

유배객, 세상을 알다 : 김려 산문집. 강혜선. 태학사. 2007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창비. 2011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푸른역사. 2007
한국문학통사. 조동일. 지식산업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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