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란 테니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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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테니스란 테니스의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중앙에 네트를 치고 양쪽에서 라켓으로 공을 주고받으며 승부를 겨루는 경기이며 남녀 단식과 복식 혼합 복식의 경기 방식이 있다.
테니스의 역사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라뽐므 라는 경기가 테니스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이 경기는 당시 귀족과 사원의 수도사 들에 의해 행해지던 볼 게임으로 손바닥으로 공을 치고 받는 형태의 69스포츠였다고 한다. 이것이 13세기 경 프랑스 귀족과 성직자들 사이에서 주 드 폼므 라는 손바닥 게임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주 드 폼므는 털이나 천을 채워 둥글게 만든 공을 맨손이나 장갑을 끼고 손바닥으로 때리던 경기로서 코트의 중아에 만든 경계 벽을 넘어서 반대쪽 3방향의 벽 어디에든지 손바닥으로 공을 쳐 넣은면 상대방은 이공을 직접 또는 한 번 바운드 된 공을 손바닥으로 다시 쳐서 넘기는 경기였다. 1360년 경 영국 사람들이 이 경기를 자국에 소개할 때 테네즈 즉 공을 친다 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에서 테니스라는 명칭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테니스 명칭의 효시가 되었다 당시의 경기는 맨손으로 할 경우 손바닥이 너무 아파 장갑을 끼고 시행했는데 이것이 조금 발전하여 15세기 후반에 라켓을 개발하게 된다. 그 이후 테니스는 폭발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1596년 프랑스 파리의 인구가 30만명일 때 테니스 코트는 250개에 달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영국 중산층들이 여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스포츠를 원했는데, 당시 크리켓이 인기를 끌었지만 경기장을 특별히 마련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있어, 넓은 잔디밭에서 할 수 있는 운동으로서 테니스가 적당했으며 체계를 세워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1873년 인도 주재군 소령이었던 영국 사람 윙필드가 경기 체계를 세우고 그 이후 테니스는 급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 테니스의 발자취
우리나라의 테니스가 들어 온 것은 80여년 전 미국의 선교사 뱅커 씨와 엔더슨 박사에 의해 서이며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은 1962년 경성제국대학 정구 부장이였던 강성태 씨가 연식정구부를 테니스 부로 전환시키면서 부터이다. 그러나 볼, 라켓 등 용구가 없어 별로 발전이 없었으나 8.15 해방 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군들의 영향으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해 1945년에는 경식과 연식이 통합된 조선정구협회가 결성되었고 1948년 9월에는 세계정구연맹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
테니스의 준비물
라켓: 볼을 가격할 때 이용하는 타원형의 머리가있는 라켓. 무게는 대개 250~350g 이며 길이는 약 70cm이다. (라켓의 부위별 이름 틀: 줄이매인 라켓의 틀, 머리: 틀과 줄로 구성된 라켓의 타원형 부분, 어깨: 목과 연결된 라켓의 머리의 아래 부분, 목: 손잡이와 라켓의 머리가 이어지는 부분, 자루: 머리에서 끝나는 라켓의 가늘고 기다란 부분, 손잡이: 라켓을 휘두를 때 선수가 잡는 부분, 끝: 손잡이에서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불룩하게 만든 자루의 끝 부분, 줄: 합성 또는 천연 소재의 줄을 교차하여 만든 면. 공을 가격할 때 닿는 면이다.)
공: 무게의 56g의 압축 공기를 채운 고무 공. 점착성을 강화하기 위해 펠트로 싸여 있다.
테니스 화: 코트와 마찰이 생겨 미끄러지지 않도록 밑면에 홈이 많이 나있다.
운동복: 편안한 복장의 트레이닝복.
테니스 코트의 종류&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