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을 위한 인문학적 비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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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건강한 삶을 위한 인문학적 비전8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이런 욕망을 반영하듯 우리 사회는 늘 앞 다투어 건강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필사적으로 뛰고 달린다. 최근에는 채소가 사람에게 좋다는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채소 값이 폭등해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되었다. 칼릴지브란은 “신은 영혼을 위한 신전으로써 우리들의 육신을 만들었으며 그 신전은 신을 그 안에 모실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깨끗하게 유지해야만 한다.”고 했으며 유베날리스는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몸이 건강해야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내 자신이 건강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조건 건강을 외치거나, 그 목적이 다분히 육체적 욕망을 위한 경우가 많고, 정작 가꾸고 다듬어야 할 정신은 황폐하게 방치한 채 ‘좋은 몸 만들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사례를 볼 때면 정신없이 불어 닥치는 건강열풍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붉은 포도주가 몸에 좋다는 보도가 나가자 금방 포도주가 동이 나고, 등 푸른 생선이 좋다고 하면 밥상엔 생선만 오르고, 곰쓸개가 몸에 좋다고 목숨을 걸고 쓸개즙 주사를 맞는 무지막지한 짓도 마다하지 않으며, 사슴의 생피도 빨아먹고, 뱀의 간도 꺼내 먹는다. 그러나 미리 건강을 생각하기 전에 대부분은 혀를 만족시키는 달콤한 맛에 정신을 빼앗기고,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기피하므로 비만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뒤 늦게 건강을 위해 온갖 약품을 섭취하고 지방을 뽑아내는 수술까지 감행한다. 먹는 것을 줄이면 될 텐데, 지나치게 먹고 그것들을 소비하느라 다시 달리는 ‘다람쥐의 달리기’를 계속한다. 전체가 10이라는 인생을 건강하게 살겠다며 그 반인 5는 먹고 자는 일로, 다시 남은 절반을 뛰고 달리는 데 써 버린다면,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잊어버린 채 ‘운동을 위한 운동’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는 인생이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싶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얼마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운동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라며 자신의 신체장애를 빗대어 한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이유와 목적이 없는 단지 ‘건강을 위한 건강 챙기기’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진실로 건강이란 삶의 기본적인 조건으로 누구도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가질 수 없다. 특정 전문인의 잘못된 건강에 대한 인식은 소수만으로도 큰 파급효과를 낳는다. 현대의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불치병이 하나 둘 씩 정복되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건강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 건강을 위해 제시할 수 있는 올바른 인문학적 비전이란 어떤 것이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2. 본론
당신은 건강하십니까? 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이 있고 없음의 몸 상태의 불편 여부를 연상 또는 기준하여 답한다. 그러나 병이 있고 없음이나, 신체의 기능만으로 판단하는 건강의 상태는 매우 작은 의미이며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안녕, 역동적 개념 모두가 건강할 때 비로소 완전한 건강상태라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47년 건강에 대해 건강하다는 것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 후 WHO는 1998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간 정의되어 있던 건강개념을 수정, ‘영적 안녕’과 ‘역동적 개념’을 신설 추가하여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맑고 역동적이어야 건강한 사람이라 하였다.(헌장 개정안 98년 5월 11일 WHO총회에 상정 인준 받음.) 대한민국의 헌법은 건강에 대해 모든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라고 규정하여 건강을 기본권적 개념으로 보고 있다. 건강개념의 변천사를 보면, 19세기 이전은 신체적 개념 그 이후는 심신의 개념 즉 육체와 정신 두 가지로 정의 되었고, 그 후 1947년 사회적 건강을 포함시켰고, 1998년 ‘영적 안녕’과 ‘역동적 개념’을 추가 시켰다. 오늘날에 와서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의 건강은 개인이 모든 차원에서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의 내적, 외적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건강이란 각 개인의 사회적인 역할과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 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역할 수행능력의 면까지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건강에 대한 개념이다. 위와 같이 수집한 정보들과 나의 경험을 종합하여 나름대로 다시 건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건강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지금의 건강은 수치에 의한 의사의 판단 아래 객관적인 시각으로 결정지어진다. 그러나 같은 수치이더라도 일관된 결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의 혈당이 평균치보다 약간 높게 측정되었다면 그 사람은 당뇨병 환자일 가능성도 있지만, 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당뇨병 환자라면 보통 사람은 걱정할 수치이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그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상태인 것이다. 예로 든 것처럼 수치 분석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들에는 이렇게 인식하기 쉬운 것들도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인자들이 존재할 수 도 있으므로 객관적 수치만을 갖고 어떤 사람의 건강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른 예로는 강신익 교수님의 뇌 동맥 중 한 혈관이 막혀있다는 것도 들 수 있다. 이것은 결과만 볼 때 심각한 질병 상태일 수 있지만, 사실 서서히 막히며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으므로 건강한 상태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건강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떠나서의 인간은 인간으로서 생활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우리는 의지에 의해서이든 의지가 아니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 가가 바로 사회생활을 건강하게 영위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 심리적 경계(psychological boundary)를 통해 먼저 서로가 독립된 경계를 가진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 관계의 기술
이는 각자 각각의 삶을 살아가되 서로 간에 관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각자의 경계는 분명하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공유 부분이 전혀 없는 경우이다. 두 번째로는 둘 간에 경계가 없어서 각자의 독립된 공간이 없이 나와 너가 합동의 상태가 된 것이다. 흔히 서로 함께 합해진 관계가 이상적인 관계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은 서로가 경험한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설명하고 이해하려한다. 나와 너의 경계가 없어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관계를 병적인 관계로 보고 있다. 이런 관계는 건강한 관계의 반대말정도로 상호발전의 기회를 막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대인관계를 알아보자. 각자의 경계는 있되 공유하는 부분과 개인 고유의 영역이 나누어져 있다. 관계의 종류나 정도에 따라서 공유되는 부분이 더 많을 수도 있고 더 적을 수도 있다. 따라서 건강한 대인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독립적인 공간을 침해하지 않고, 나와의 공통된 영역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세 번째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좁혀가며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걸음 디뎌 나갈 때 얻는 성취감이란 앞으로 더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건강한 자아발전의 기회가 될 것이다. 남을 위해 사는 삶에서 얻는 보람 또한 그런 원동력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신적인 면에 치중하여 건강을 정의한다면 혹자들은 신체적 건강의 비중이 너무 적다고 반론할 것이다. 물론 신체적 건강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런 건강이란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고 객관적 수치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정신적 건강에 비해 비중이 적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름 어머니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 한 권이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그 책은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수필집으로 그 분은 미국에 유학까지 다녀와 교수자리에까지 이른 지식인이기도하지만 어려서부터 소아마비에 걸려 학업에 어려움이 많았고 유방암과 척추암 두 차례에 걸친 투병생활을 이겨내야 했던 환자이기도 하다. 신체적으로 보면 어느 누구 못지않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졌을 분이지만 이걸 알게 된 건 책을 다 읽고 난 뒤였다. 그런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책에는 밝고 긍정적인 태도의 글의 가득했다. 책의 내용에서 그녀는 소아마비를 이제 자신의 일부로 받아 들였으며, 자신은 남들보다 약간 불편하기만 할 뿐이라고 그녀는 담담하게 밝혔다. TV프로그램에서도 신체장애를 갖고 있더라도 밝고 긍정적인 모습의 장애우들이 밝게 웃는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오히려 신체 기능은 정상이더라도 왜곡된 생각을 가진 범죄자들과 비교한다면 그들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신체의 장애는 불편함일 뿐 그들의 삶에 다른 영향을 미치게 할 순 없을 것이다.
3. 결론
건강한 몸을 만드는 목적이 육욕을 채우고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그런 건강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폭력의 도구일 뿐이다. 에픽테토스라는 “생활에 있어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육체적인 것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음식을 탐한다든지, 또는 오락과 유흥에 몰두한다든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품성을 낮추는 결과가 된다. 사람은 그의 많은 시간과 행동을, 정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 말했다. 정말로 육체를 위한 몸만들기는 정신은 물론이요 결국 육체마저 병들게 한다. 지하철을 타보면 책을 읽는 승객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 다들 병든 닭처럼 고개를 한쪽으로 떨어뜨린 채 잠을 청하고 있다. 건강을 챙긴다며 새벽잠을